아름다운 여체…그러나, 처연하다.
누드미술의 기원(하) 여성누드
비극적이거나, 팜파탈이거나
남성의 권력과 시선 안에 맴돌아
현대페미니즘 이르러 주체 회복
≫ <카피톨리누스의 비너스> 기원전 1세기, 대리석, 등신대, 로마 카피톨리노 미술관(왼쪽)
<죽어가는 니오베의 딸> 기원전 450~440년경, 대리석, 높이 149.9㎝, 로마 테르메 미술관(오른쪽)
서양 누드 미술의 기원이 남성 누드라는 것은 여성이 전혀 누드로 표현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르카익기와 고전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특히 본토 남부와 에게해 주변 지역에서 누드 여신상이 빈번히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서양미술의 진정한 근원이 고전기의 그리스라고 할 때, 이는 일단 전사(前史)적인 것으로 그 의미를 접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아르카익기와 고전기의 그리스에서도 누드로 표현된 여성상이 존재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 그들은 대부분 창부나 무희 혹은 비극적인 운명의 희생자들이었다. 남성과 문명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소외된 자들이었다. 고전기 여성 누드의 이런 특징으로부터 사람들은 그리스 여성 누드가 남성 누드와 달리 주체성보다는 객체성, 동일자보다는 타자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비극적인 운명의 희생자로 묘사된 작품에서 우리는 그 타자성의 절정을 본다. 희생자 누드는 여성의 연약함을 강조함으로써 여성의 불완전성과 남성에 대한 종속성을 부각시킨다. 납치를 당하거나 공격을 받은 여성이 폭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며 속살을 드러낼 때 그 비극성은 극대화되기 마련이다.
그리스 여성 조각에서 옷은 문명의 상징이다. 옷이 지닌 이런 상징성으로 인해 옷을 입은 여성은 문명으로부터 충실한 보호를 받는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므로 그 상징물이 갑자기 제거되어 버리면, 여성은 아무런 보호 없이 버려진 아이처럼 극도로 연약한 존재로 비치게 된다. 누군가에게 보호와 구원을 간절히 요청하는 이런 이미지는, 물론 여성이 평균적으로 남성에 비해 육체적으로 약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여성은 항상 보호가 필요한 존재라는 편견을 낳는 동시에, 그 ‘결핍’만큼 주체로서 결함이 있다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
이런 이미지를 간직한 대표적인 작품이 기원전 5세기 중반의 <죽어가는 니오베의 딸>이다. 작품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니오베의 이야기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 카바넬 <비너스의 탄생> 1863, 유화, 130x125㎝, 파리 오르세 미술관
니오베는 테베의 왕비였다. 아름다운 용모에 자식도 딸 아들 각각 일곱씩 둔 축복 받은 여인이었다. 어느 날 테베인들이 쌍둥이 남매 신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기리는 축제를 벌이자 니오베는 두 신의 어머니 레토가 자식이 기껏 둘밖에 없다는 사실을 비웃으며 축제를 무산시켰다. 이에 격분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그녀의 자식들에게 화살을 쏘아대 모두 그날로 이승을 하직했다. 충격을 받은 왕은 자살해 버렸고, 니오베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그 자리에서 돌로 굳어버렸다.
<죽어가는 니오베의 딸>은 바로 이 비극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가 신의 화살에 가련하게 스러지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소녀는 등에 화살을 맞은 듯 팔을 등 쪽으로 급하게 꺾고 있다. 하늘을 향한 얼굴에는 희미하게 원망과 탄식이 스쳐지나간다. 소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옷은 훌러덩 벗겨져 오른쪽 다리에 가까스로 걸쳐 있는데, 그처럼 허무하게 허물어져 내린 옷과 ‘날것’으로 드러난 몸이 소녀의 비운을 더할 나위 없이 아프게 전해준다.
<벨베데레의 아폴론>과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이 전해주는 자기 확신이나 자존심과 굳이 비교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드물게 제작됐던 고전기 그리스의 여성 누드가 여성 일반을 얼마나 객체화하고 타자화하고 있는지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고전기가 지나 헬레니즘기에 들어서면 누드 미술에 새바람이 분다. 창부나 희생자가 아님에도 완전히 벌거벗은 여성 누드가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 여성은 아직 그런 누드로 표현되지 않았고, 여신, 특히 아프로디테가 이 누드의 주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자연히 이 누드에서는 비극미가 아니라 여체의 미에 초점이 맞춰졌다. 따지고 보면, 고전기 그리스에서도 여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조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얇은 것이라도 옷을 입은 형태여서 ‘간접화법’으로 이를 나타내는 게 상례였다. 그러나 고전 말기와 헬레니즘기에는 마침내 ‘직접화법’이 동원됐고, 그리스 미술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베낀 로마에 이 전통이 다른 그리스 전통과 함께 그대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때 이후 서양미술사에서 여성 누드가 여체의 아름다움을 더욱 선명히 보여주는 방향으로 발전했음에도, 장장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여전히 주체보다는 객체로, 타자로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 누드가 어떤 양태로 표현되든 시선의 권력관계에서 늘 피지배자로 묘사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관자는 항상 남성으로 전제되어 있었고, 이 남성의 시선이 남성 누드와 여성 누드를 바라볼 때 각각 자기 동일시와 대상화로 분열하면서 여성 누드는 무엇보다 남성의 욕망을 반영하는 객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관자의 시선과 마주해 고혹적인 눈길을 보내든 부끄러워 몸을 숙이든 그들은 주체인 남성의 시각을 의식하고 그 의식의 지배를 받는 타자들이었다.
기원전 1세기 로마 시대의 조각 <카피톨리누스의 비너스>를 보자. 비너스는 살짝 몸을 웅크린 채 두 손으로 가슴과 국부를 가리고 있다. 이 자세는 ‘푸디카 베누스’(정숙한 비너스)로 불리는데, 관자의 시선을 예민하게 의식하는 그 모습으로부터 여성적인 수동성을 선명히 느낄 수 있다. <벨베데레의 아폴론>의 능동성과 대비되는 이 특질은, 비록 여신이지만 비너스 또한 보임을 당하는 자로서 피지배자의 위치에 놓여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물론이 작품이 지닌 지고의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을 매혹시킨다. 여성 누드가 자아내는 이런 매력은 관자로서의 남성을 강력히 사로잡아 때로 심리적인 위상을 역전시키기도 한다. 심리적으로 남성은 이런 매력적인 여성의 포로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심리적 반응을 넘어 가부장사회의 권력 관계를 침식할 때 전통 사회는 그런 여성상을 팜파탈(요부)로 몰아세우고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스스로 자기검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카피톨리누스의 비너스>는 그 정숙한 포즈로 아예 요부 논란이 일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이 고대의 조각가는 뇌쇄적인 누드상을 만든다는 것을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근대의 예술가는 관능의 표현에서 고대의 선배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카바넬이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 비너스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성적으로도 꽤 도발적이다. 그는 누워 있으며 관자를 유혹하려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눈길도 고혹적이다. 이런 도발성은 그러나 억압과 차별의 벽을 깨고 스스로를 욕망의 주인으로 선포해 주체성을 회복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성의 욕망을 더욱 자극하고 이에 지배당하기 위해 스스로를 가일층 대상화·타자화하고 있을 뿐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 이 그림의 관자의 시선 또한 여전히 남성의 시선이다. 20세기 들어 깨지기 시작한 이 시선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현대 페미니즘 미술에 와서다. 철저한 여성의 시각으로 여성이 표현되고서야 비로소 여성 누드는 온전한 주체성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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