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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론 Open강좌/미술용어

금속공예_金屬工藝

by 태풍되고픈천둥 2012. 7. 19.

 

금속공예(金屬工藝)

 

 금속을 주재료로 인간생활에 필요한 일용품이나 장식품을 만드는 공예. 재료에 따라 귀금속공예와 보통금속공예로 나눈다. 금·은 또는 백금과 같은 것을 사용하는 귀금속공예는 주로 장식품을 만드는 공예이고, 구리나 철을 쓰는 보통금속공예는 일용품이나 도구, 기계류를 만드는 공예로 금속공예의 주종을 이룬다.


【역사】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금속은 자연금이나 자연동으로, 유리(遊離)된 상태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금은 그 아름다운 광택으로 인하여 사람들 눈에 띄게 되었고, 가공하기가 쉬워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

 

〈서양〉: BC 50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는 금과 구리가 알려져 있었고, 그때 이미 비즈나 핀이 구리로 만들어졌다. 청동은 BC 3000년대 후반, 서아시아에서 쓰였으며 제12왕조 무렵부터는 이집트에도 들어와 널리 보급되었다. 이 청동은 기물이나 무기, 그리고 조상(彫像)의 소재로 많이 이용되었다. 청동조상은 주로 납형주조방법에 의존하였으며 제18왕조인 투탕카멘왕 분묘에서 현란한 금속공예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철은 히타이트족이 처음 사용하였다고 하며 그들 문명이 꽃핀 것은 BC 2000년에서 BC 1200년 사이였다. 철이 동양으로 보급된 것은 BC 12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리스·에트루리아·로마에서는 금은으로는 작은 기구를 만들고, 큰 그릇이나 거울은 주로 청동으로 만들었다. 그것에는 예술적인 디자인이 베풀어져 항아리·거울·화장상자 등에 선각문(線刻紋)이나 조소적 장식이 들어 있다. 에트루리아에서는 누금세공이 발달하였으며 또 정교한 은을 상감한 청동기도 만들어졌다. 사산조 시대의 페르시아 공예는 고대 오리엔트의 전통을 이어받아 발달하였다. 7세기 전반 이후의 이슬람 시대에는 사산조 양식의 금은공예가 발달하였으나, 이슬람의 금속공예에는 청동·황동·철과 같은 재료가 많이 사용되었다. 거기에는 주조·타출(打出)과 같은 단조·선조·상감·부식 등 다채로운 기법이 쓰였으며, 에마유·클루아조네 등의 칠보기술도 쓰였다. 청동은 동물형 물그릇이나, 각종 향로·거울· 노커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황동도 기물의 재료가 되었으며, 표면에는 아라베스크· 문자명(文字銘)·꽃·인물이나 동물모양이 정교하게 조각되고 곳곳에 은이나 동을 상감하여 장식 효과를 높이고 있다.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서는, 유럽 대륙에서 우선 켈트인이 곡선적 디자인을 가진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냈으며 그리스도교의 전파와 더불어, 금속공예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메로빙거·카롤링거 왕조 때에는 보석을 상감한 귀금속품에 켈트나 로마의 전통을 살린 호화로운 작품이 만들어졌다. 청동과 은을 재료로 하는 크고 작은 주조가 행해지고, 로마네스크 시대에는 청동품의 주조가 성행하였다. 르네상스 이후에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즐겨 쓰인 금속재료는 청동이었으며, 조각 작품이나 교회용구와 일용잡기들도 역시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바로크· 로코코기에 프랑스 예술은 유럽에서 우위를 차지하였으며, 유럽의 금속공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는 생산수단 및 조형수단으로서 기계의 가치가 확인되고, 기계생산공예품이 제작되어 수공품과는 별개의 아름다움을 갖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계가 만들어내는 생산공예품 때문에 단철세공(鍛鐵細工)과 같은 공인(工人)의 특수기능을 필요로 하는 금속공예를 제외한 일반적 금속수공예는 많이 쇠퇴하였다.

 

〈중국〉: 고대 은(殷)·주(周)시대의 청동기 문화가 동양의 금속공예사상 가장 주목할 만하다. 황허강 유역에 은왕조(殷王朝)가 성립된 것은 BC 1500년경이었으며, 이 시기의 청동기는 주조기술이 우수하고 형태와 문양이 특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최성기에는 놀라울 만큼 정교한 청동기 제품이 만들어졌다. 종류는 주로 천지(天地)나 종묘제사에 쓰는 제기·무기· 악기·수레 등이 정교한 주동기술로 만들어졌다. 그것들의 표면을 꾸미는 장식 문양에는 도철문(文)이라는 수면문양(獸面紋樣)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옥석(玉石)을 박아서 그 장식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BC 1000년 이전에 이와 같은 고도의 금속문화가 발달한 것은, 중국인의 조형적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대(周代) 말기에 오면, 의례적인 기물보다는 실생활적인 기물이 많아진다. 전국∼진한(秦漢)시대에는 금은을 상감하거나 도금하여 색조가 풍부한 금속기가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는 예전과 같은 수면문이 없어지고, 무늬 없는 동기로 바뀌어 실용적으로 되었다. 한편 철기나 은기도 많이 만들어지고, 동경도 훌륭한 것이 나타났다. 한대(漢代)의 인장(印章)도 역시 고대중국의 훌륭한 주조금(鑄彫金) 기술을 보인다. 이 무렵에는 금은기도 많이 만들어졌고, 금은상감이나 감옥(嵌玉) 같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기법과 누금세공과 같은 세밀하고 정교한 기법을 살린 장신구도 많이 만들어졌다. 수(隋)나라와 당(唐)나라 시대에 들어와서는 서역(西域)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호병(胡甁)이라든지, 팔곡배(八曲杯)·각배(脚杯)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금은기가 나타나고, 무늬도 포도무늬와 같은 새로운 것으로 꾸며졌다. 송(宋)나라 때의 금은기는 당나라 때의 풍려한 아름다움에 비해 이지적이다. 무늬보다는 형태미를 추구하며 간결한 것이 많고, 문양도 번잡스러운 것을 피하고 있다. 원(元)나라 때 이후의 것에는, 대식(帶飾) 등에 부조(浮彫)한 것이 보이며, 이것은 명(明)나라 때 이후의 복잡하고 세밀한 중국 금속공예의 작풍으로 이어진다.〈한국〉: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중국에 비하면 1000여 년이나 늦은 편이다. 청동기시대 유물로는 동검·동과(銅戈)·칼집에 쓰인 초금구(金具)·동모·검파두식(劍把頭飾)·동부(銅斧)· 청동간두식(靑銅竿頭飾)·청동거형두(靑銅車衡頭)·쌍두령(雙頭鈴)·팔두령동구(八頭鈴銅具)· 견갑(肩甲)·검파형 동기(劍把形銅器)·동탁(銅鐸)·동경(銅鏡)·동물형 대구(動物形帶鉤)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런 유물들과 함께 그것을 주조하는 데 사용된 돌로 만든 주범(鑄范)도 같이 나와 청동기 제조과정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동물형대구의 조각수법은 비교적 우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동경 뒤의 세문(細文)은 가는 직선과 동심원을 정치(精緻)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어 그 솜씨가 볼 만하다. 철기도 거의 같은 시기에 한국에 들어왔다. 무기와 농기구 등의 출토유물이 더러 있으나, 부식이 심해 원형 그대로 남은 것은 드물다.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철제 아궁이는 부식이 안 된 채 비교적 완형에 가깝다. 신라와 백제 고분 출토유물 가운데는 청동제 기구들이 많다. 3개의 다리와 손잡이가 달린 초두와 정(鼎)· 완()·합(盒)·다리미 같은 것은 그 시대의 세련되고 정교하며 호화로운 금은기처럼 균형잡힌 형태와 기품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신라의 동종은 당시의 신라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중국의 동종과는 판이한 신라 특유의 형식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종 위에 달린 음통(音筒)은 신라종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신라 동종의 신비한 소리의 근원이 여기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종을 다는 고리인 용뉴(龍)·문양대(文樣帶)· 비천상(飛天像)·유곽(乳廓)·당좌(撞座)의 조각은 힘차고 정교한 아름다움이 혼연일체가 되어, 신라 금속공예의 수준을 말해준다. 석탑 안에 안치되어 있는 사리기에서도 신라 금속공예의 솜씨를 찾아볼 수 있다. 감은사서삼층석탑(感恩寺西三層石塔) 속의 사리기는 청동기공예의 걸작품으로, 높이 20 cm의 작은 사리기의 정교한 짜임새와, 거기에 배치된 신장상(神將像)·주악상(奏樂像)· 동자상(童子像) 등은 신라 불상조각을 응축시킨 듯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고려시대에도 여러 금속공예가 매우 활발하였다. 금입사(金入絲)·은입사(銀入絲) 등의 금은상감이 특히 활발하였고, 청동정병(靑銅淨甁)이나, 청동향로 등 이런 금은상감수법으로 된 매우 훌륭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사찰에서 사용되던 금고(金鼓)가 많이 만들어진 것도 고려시대이며 여러 모양을 한 동경이 쏟아져 나온 것도 역시 이때이다. 금동탑·금탑과 같이 청동소탑(靑銅小塔)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도 고려시대의 일이다. 이 밖에 합금기법도 발달하여 놋쇠로 각종 식기를 제작하였으며, 이것은 나중에 조선시대까지 계속되었다. 금속으로 만든 그릇도 당시에 유행하였던 청자기와 같은 형태나 장식을 한 유물들이 남아 있다. 금속화폐를 주전(鑄錢)하기 시작한 것도 고려 때이며,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도 역시 이때였다. 이러한 금속공예의 발달로 주조기술과 단금기술이 점차 다양해져 여러 분야의 금속제품이 만들어졌다. 장도(粧刀)·비녀와 같은 장신구의 제작과 함께 조선시대에는 목가구를 보강하고 장식하는 금구가 개발되어, 생활 가구들을 아름답게 하는 데 금속공예가 공헌한 바 크다.


【재료】
 금속공예의 재료로는 금·은·구리·주석·아연과 같은 것이 일찍부터 발견되어 사용되었고, 주석·아연·납은 주로 합금을 만드는 데 이용되었다. 철의 발견과 더불어 금속공예는 인간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데 공헌하게 되었다. 차차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에 따라 과학이 발달되고 그 결과 수많은 종류의 금속을 발견하게 되어, 새로운 합금기술이 생겨나자 금속공예는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금은 고대에는 사금(砂金)이 채취되어 쓰였다. 순금은 노란 빛을 띠므로 황금이라고 부르며, 여기에 약간의 은을 넣으면 푸른빛이 나므로 이것을 청금이라고 하였다. 또 금에 30∼70 %의 은을 넣은 합금을 호박금 또는 일렉트럼(electrum)이라고 한다. 은은 금에 버금가는 귀중한 재료로서, 순은으로 많이 쓰이고, 또 금이나 구리의 합금으로도 쓰인다. 은합금인 농은(朧銀)은 구리 3과 은 1의 합금으로 약간 회색을 띤다. 구리는 붉은색이기 때문에 적금이라고도 한다. 청동은 구리에 주석·납을 섞은 것이며, 백동은 주석을 특히 많이 섞은 것이다. 구리에 백랍과 약간의 금을 넣은 것이 적동이며, 이것은 흑자색을 띠기 때문에 검푸르다고 해서 오동(烏銅)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 그릇을 만드는 재료인 놋쇠는 구리에 아연을 약 30 % 섞은 합금이다. 근대에 와서는 알루미늄이 발견되어 그 가볍고 늘어나는 성질(展性 또는 延性)을 이용하여 여러 일용품을 만드는 데 널리 쓰이고 있다. 또 무른 성질은 다른 금속과의 합금으로 더 단단하고 강인하게 만들 수 있어 그 용도가 넓어지고 있다. 쇠는 용도가 많지만, 공기나 물 속에서는 쉽게 산화하여 녹이 슬고 부식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을 다른 금속과 합금하여 만든 스테인리스강은 녹슬지 않고 금속 특유의 빛깔과 광택이 있어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가공기법】
 금속재료를 가공하는 기법을 크게 나누면 주금(鑄金)·단금(鍛金)·조금(彫金) 등이 있다. 이것은 금속에 열을 가하면 물러져 늘어나거나 펴지거나 구부러지거나 할 수 있는 성질과, 아주 높은 열을 가하면 녹아서 유동적인 액체가 되었다가 식으면 다시 굳어져서 원래의 상태로 되는 성질, 그리고 더 단단한 도구로 뚫거나 자르거나 파낼 수 있는 성질을 이용해서 가공하는 방법 등을 말한다. 주금은 아주 옛날부터 사용하던 기법이다. 만들고자 하는 모양을 돌에 파거나, 흙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금속을 거기에 녹여 부어 굳히는 기법이다. 옛날 동검(銅劍)이나 동촉(銅)·동경(銅鏡) 등은 모두 만들고자 하는 모양을 돌에 조각한 주형(鑄型)에 구리를 녹여 붓는 주금법으로 만들었다.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는 주금법은 만들고자 하는 것의 모양을 나무로 깎거나 쇠로 만들어 그 원형을 모래나 흙을 섞은 주토(鑄土)에 눌러 사형(砂型)을 만들고, 두 쪽을 마주 붙여 그 빈 곳에 금속용액을 부어 만들었다. 이런 방법 외에도 현대에는 원심력을 이용한 원심주조나, 전기도금 원리를 이용하는 전기주조 같은 주금법도 사용되고 있다. 단금(鍛金)은 옛날 대장간에서 낫이나 호미를 벼리는 것과 같은 수법이다. 금속을 불에 달구어 그것을 두들겨서 얇게 하거나 늘이거나 또는 구부리거나 하여 원하는 모양으로 만드는 기법이다. 철기시대 이후에는 철로 만든 모든 기구들이 주로 이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금속이나 돌로 만든 형 위에 벌겋게 달군 금속판을 올려놓고 두들기면, 자연스럽게 형과 같은 모양이 만들어진다. 놋쇠대야도 이렇게 만든 것이 있어서 그릇 전면에 두들긴 자국이 무늬처럼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원리를 기계의 힘으로 하는 것이 현재의 프레스(press)나 스웨이징(swaging)이다. 그러나 프레싱은 복잡한 모양을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병이나 울퉁불퉁한 모양의 것은 프레스로 만들기는 어려워, 달군 금속판을 형 위에 씌우고 회전시켜 금속제 촉으로 눌러 성형하는 스피닝(spinning) 기법 등이 사용된다. 철판이나 철선·동선(銅線) 등을 만드는 것도, 모두 금속의 전성(展性)과 연성(延性)을 이용하는 단금법이다. 조금(彫金)은 금속 표면을 깎거나 파거나 또는 다른 금속이나 돌을 파넣는 기법이다. 이것은 금속제품을 아름답게 보일 목적에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금속판을 파내어 여러 무늬를 만드는 투조(透彫), 여러 금속을 박아 넣어서 장식하는 상감(象嵌), 선을 파서 무늬를 그리는 선조(線彫), 아름다운 무늬가 두드러져 나오게 만드는 부조(양각), 금속의 가는 입자나 선을 붙여서 정교한 무늬를 내는 누금세공(鏤金細工) 등이 옛날부터 발달하였던 방법이다. 그러나 기계가 발달해서 오늘과 같이 정밀한 가공이 필요하게 되자 주금이나 단금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그대로 만들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 결과 정밀함을 필요로 하는 것은 선반(旋盤)으로 깎게 되었으며, 이것도 조금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또 구멍을 뚫는 보르반(盤)도 조금 방법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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