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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론 Open강좌/미술용어

네오다다이즘_Neodadaism

by 태풍되고픈천둥 2012. 7. 19.

네오다다이즘(Neodadaism)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추진된 전위예술운동이다. ‘새로운 다다이즘’이라는 의미로 이 운동은 모든 전통적 가치나 이성의 우위 및 예술의 인습적 형식에 도전하여 미(美)의 가치 체계를 바꾸 려고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다다이즘이 이어지는 것으로, 이미 이루어져 있는 미적 가치를 파괴하고 새로운 창조활동을 지향하려 하는 움직임이다. 이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표현 주의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의 대립에 대해 전혀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 한 것으로, 당시 유럽에 서 일어나고 있던 신사실주의 운동에 호응한 것이다.  추상예술이 외계 사물과의 대응을 완전히 거부하고, 순수하게 형태와 색채의 구성 또는 기계적인 수법에 의한 우연성의 미학을 추구한 데 반해 네오다다에서는 작품 속에 외계의 기성(旣成) 오브제(objet)를 도입하려고 한다. 그때 현실세 계의 단편인 이들 오브제는 현실세계에서의 실용적·공리적(功利的) 의미 및 역할을 잃어버리고, 단순히 조형적 소재로서 작품 속에 끼어들어온다. 게다가 이들 오브제는 외견상으로는 현실적인 것의 모습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회적 존재의 잔해(殘骸)로서 보는 이 앞에 놓인다. 거꾸로 말하면, 한때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던 것을 억지로 본래 의 장소에서 단절시킴으로써 그것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혼란시키고, 새로운 가치체계 속으로 끌 어들이려 한다.
  따라서 일찍이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다다이즘이 오브제를 작품 속에 끌어들 이면서 그것을 오직 기성 미적 가치의 파괴라는 부정적 의미로만 사용했음에 반하여, 제2차 세계 대전 후 네오다다의 작가들은 이들 오브제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하는 것이다. 네오다다가 단순한 반예술활동이 아니라 적극적 창조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네오다 다이즘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커다란 역할을 한 사람은 만년을 뉴욕에서 지내며 활동한 전날의 다 다이스트인 마르셀 뒤샹이었다. 뒤샹 자신은 다다이즘의 활동에 참가한 후 실제의 제작활동에서 는 멀어지고 말았지만, 그의 존재 자체는 미국의 젊은 화가들에게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뒤샹의 정신을 이어받은 네오다다의 작가로는, 숫자·글자·기(旗)·명함 등 아무데나 있는 재 료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J.존스, 기름물감으로 그린 화면과 폐품을 짝지움으로써 이지적 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H.로젠버그, 고철조각이 된 쇠부스러기 같은 것을 소재로 하는 J.체임벌린, 얼빠진 유머를 화면에 감돌게 하는 J.다인, 조각가인 R.스탄키에비츠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로 젠버그·존스·다인 등과 같은 화가들은 신문의 보도사진, 명화(名畵)의 복사물, 통조림의 레테르 등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대중적 이미지를 화면에 이용하므로 역시 문명사회에서 대량생산되는 통속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다른 일군의 화가들과 함께 팝 아트(pop art)라는 명칭으 로 불리기도 한다.
이 명칭은 포퓰러 뮤직, 즉 통속음악을 팝 뮤직이라 약칭하는 것을 흉내내어 1950년대 초부터 쓰이기 시작한 말이며, 다다나 네오다다의 작가들이 오브제 그 자체를 작품세계 속에 끌어들여온 데 대해서, 오브제의 복제(複製)인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이미지를 작품에 이용하 는 것에 커다란 특색이 있다.
이를테면 신문 연재만화의 한 커트를 확대한 것과 같은 작품을 만 드는 R.리히텐슈타인, 수영복차림의 미인 광고사진을 이용하는 M.레이스, 미국영화의 스틸사진과 같은 이미지를 조합하는 J.로젠퀴스트, 마릴린 몬로의 사진이나 공장의 표지 등을 이용하는 A.워 홀 등이 그 대표적 작가들이다. 이들은 네오다다의 정신을 대중사회의 이미지에 의해 이어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