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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론 Open강좌/미술용어

마그리뜨_Rene Francois-Ghislain Magritte

by 태풍되고픈천둥 2012. 7. 20.

마그리뜨(Rene Francois-Ghislain Magritte:1898.11.21~1967.8.15)

 

 

 

  "내 그림은 아무런 의미도 감추고 있지 않은 가시적인 이미지이다. 그것은 신비를 불러 일으킨다. 내 그림을 본 사람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지?,,,'라며 간단한 자문을 한다. 신비라는 것이 아무런 숨겨진 의미 없이 단지 불가해한 것과 마찬가지로 내 작품 또한 의미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나는 나의 과거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누구의 과거도 관심이 없다." -마그리뜨-  벨기에의 화가. 1898년 레신느 출생. 14살이던 해, 어머니 아들린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마그리뜨는 1916년부터 브뤼셀의 왕립 미술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 벽지 공장의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광고를 위한 스케치를 그리게 되었고 1926년 브뤼셀의 한 화랑의 지원을 얻어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초현실주의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그 직후였다. 얼마 동안 큐비즘(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다음, 26년부터 30년까지 파리에 체류하여, 시인 P.엘뤼아르 등과 친교를 맺고, 쉬르리얼리즘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A.브르통 등이 제창하는 오토마티슴이나 편집광적인 꿈의 세계 탐구에는 동조하지 않았으며, G.키리코 등의 형이상회화파와 일맥상통하는, 신변 물체의 결합과 병치(竝置), 변모 등으로 신선하고 시적(詩的)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쪽을 좋아했다.  그는 1927년에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당시의 비평가들에게는 그의 작품이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해 그는 아내와 함께 파리 근교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그는 시인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를 포함한 초현실주의자들과 알게 되어 가까이 지냈으며 막스 에른스트의 콜라주도 접하게 되었다. 1930년 브뤼셀로 돌아온 후에는 여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지냈다. 그는 1940년대에 인상주의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양식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다지 만족하지 못했고 그는 차츰 이러한 실험을 그만두었다. 그후로는 그만의 고유한 양식으로 비논리적이며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를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여름의 계단》(1937) 등에서 볼 수 있듯이 40년경까지 독자적으로 성숙했는데, 서로 고립한 현실적 물체를, 논리를 뒤집음으로써 재미있게 서로 결합시키고, 명쾌하게 묘사하여 매혹적인 환상의 세계를 그렸다. 이러한 평이하고 깔끔한 작품들은 밤의 신비나 괴기를 즐기는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 주목되었다.  그의 작품에는 어린시절부터 그가 열중했던 바다와 넓은 하늘이 강렬하게 묘사되어 있다. "위협적인 날씨 (Threatening Weather, 1928)" 에서는 구름이 흉상과 깔대기 모양의 금관악기 및 의자 모양으로 나타난다. "피레네의 성 (The Castle in the Pyrenees, 1959)"에는 거대한 바위 위에 작은 성이 서 있고, 그 바위가 바다를 떠다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밖의 환상적 표현으로는 인간의 다리를 가진 물고기, 몸통이 새장으로 되어 있는 인간, 애완용 사자 옆에서 벽 위로 몸을 기대고 있는 신사 등이 있다. "골콘다 (Golconda, 1953)"에서는 집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거리를 향해 사람들이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이 '사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그림에는 그것의 대상이 되는 실제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사물의 근원과 위계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옛날 플라톤은 그림이란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 세계를 다시 모방한 것이기에 이데아에서 한 단계 더 멀리 떨어져 있고, 그래서 저급한 활동이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이러한 믿음에 도전한 사람이 '르네 마그리트' 였다. 그는 교묘하게 현실과 그림의 경계를 흐려 놓았던 것이다. 그의 회화는 일상세계의 흔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즉물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유용성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사물 그 자체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의 예리한 힘을 느끼게 한다. 전쟁의 참화와 폭력에 대한 격렬한 저항을 표출한 1940년대 중반의 한 시기를 제외하고, 말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발전’를 보이지 않는 마그리뜨의 화풍이 보여주는 이질적인 사물들 사이의 기발한 연계(連繫)의 세계는 우리를 매번 놀라게 한다. 생애의 마지막 해에는 그의 그림에서 따온 이미지를 토대로 여덟 개의 청동 조각을 만드는 일을 감독했다. 1967년 8월 15일 마그리뜨는 브뤼셀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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