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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론 Open강좌/미술용어

미래파(未來派)/미래주의_未來主義 : Futurism

by 태풍되고픈천둥 2012. 7. 21.

미래파(未來派)/미래주의(未來主義 : Futurism )

 

Carlo Carra

 

 

  기존의 가치와 문화에 대한 혁신을 시도한 운동인 미래주의는 20세기 초 현대미술의 중심지 였던 파리가 아닌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이탈리아어로 푸투리스모라 한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정치, 경제가 상당히 낙후되어 있던 상태였고, 미술에서는 1905년이 지나서야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상징주의, 아르누보 등의 다양한 조류 등이 전해졌다. 미래주의는 이러한 조류들의 유입으로 야기된 혼란을 극복하여 이탈리아를 현대미술의 주류로 내세우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제시된 새로운 세계관이다. 전통을 부정하고 기계문명이 가져온 도시의 약동감과 속도감을 새로운 미(美)로써 표현하려고 하였다. 또한 미래주의 운동은 이탈리아 버전의 입체파 운동이라 볼 수 있다. 당시 이탈리아는 신흥 산업국으로서 제2의 도약을 원하던 시기였고, 따라서 과거전통의 굴레를 벗고 새로운 문명, 즉 기계산업문명을 예찬해야만 할 정치적, 사회적 욕구가 팽배해 있었다.  이러한 진보를 위한 욕구는, 1909년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F.T.마리네티가 프랑스의 신문 《피가로 Le figaro》에 <미래주의 선언: Manifeste de Futurisme>을 발표하며 "기계의 위력에 의하여 출현한 새로운 세계를 환영하고, 과거에 대한 모든 집착을 거부"할 것을 주창했다. 특히 <미래주의 선언>의 11개 강령 중, 제4항은 미래주의 미술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미로 속도의 아름다움에 의해 세계가 빛나게 될 것을 선언한다. 마치 터질 듯이 헐떡이는 뱀 같은 파이프로 장식된 멋진 경주용 자동차-폭발하는 화약으로 뛰어드는 미친 듯이 달리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상]보다 더 아름답다." "We affirm that the world's magnificence has been enriched by a new beauty : the beauty of speed. A racing car whose hood is adorned with great pipes, like serpents of explosive breath- a roaring car that seems to ride on grapeshot is more beautiful than the Victory of Samothrace."......Filippo T Marinitti, “Manifeste du Futurism”, Le Figaro, Paris  새로운 형태의 美로서 속도의 아름다움을 주창한 이 선언은 1년 후의(1910년 2월) 보치오니, 카라, 루솔로, 발라, 세베리니 등의 미래주의 작가들이 중심이 된 <미래주의 화가선언>등, 일련의 선언문의 바탕이 되면서 "역동주의 미술"을 탄생케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의 주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현대적 감수성은 속도의 관념을 파악하는 데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도시와 도로를 뚫고 질주하는 힘찬 자동차, 흥분된 군중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원천이 되는 이러한 것들은 두 개의 사과 보다도 더 강하게 우리들의 서정적, 또는 극적인 세계의 감각을 만족시켜 준다."  보치오니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역동성은 바로 이들의 이러한 신념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은 이념이 당시 이탈리아에서 생기게 됐을까? 마리네티가 살고 있던 곳은 당시 상공업의 중심지였던 밀라노였고, 밀라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토리노에는 피아트 자동차 회사가 세워져 이미 자동차 경주까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후진산업국으로부터 이제 막 도약하려는 이탈리아에게 무시 못할 짐이 되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과거의 위대한 위산에 대한 부담이었다. 정치적 경제적 도약을 위한 발판을 한창 만들고 있던 당시의 이탈리아에게 과거에의 집착은 심각한 장애요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마리네티는, 다시 한번 문명의 주인,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에 무력해져 버렸으며 고고학적 풍요 속에 박제가 되 버린 당대의 이탈리아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의 집착을 거부하고 기계산업을 찬양하는 이와 같은 <미래주의 선언>은 그래서 순전한 "이탈리아産"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선언에서 마리네티는 과거의 전통과 아카데믹한 공식에 반기를 들고 무엇보다도 힘찬 움직임을 찬미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전쟁을 찬미하기도 하고, 미술관이나 도서관을 묘지(墓地)로 단정, 그 파괴를 바랄 정도로 과격한 것이었다. 이를 이어받아 U.보초니, C.카라, L.루솔로, G.발라, G.세베리니가 이듬해 <미래주의회화 기술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미래주의의 미술운동이 조직되었다. 이 밖에도 역시 다섯 사람이 서명한 <미래주의 제3선언>, 보초니에 의한 <미래주의 조각기술선언>(모두 1912)이 있다.  1912년은 미래주의 화가들에게 전환의 계기가 되는 해로, 세베리니의 주장으로 보치오니, 루솔로, 카라가 파리를 여행하게 되고, 그 곳에서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를 접하게 되면서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그러나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가 단색의 파편화인 반면 미래주의 화가들은 입체주의의 기하학적 형태의 파편 화에 밝은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새로운 세계를 위한 새로운 예술을 요구하며 과거의 예술에 대한 집착을 거부한 미래주의 화가들의 초기의 작품에는 신인상주의의 색채 분할기법이 중요하게 강조되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표현할 회화적 수단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대담한 선언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그들의 작품은 작품의 양식적인 면에서 보다는 주제면에서 미래주의적인 성향을 띄었다.  그들은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던 입체주의와 마찬가지로, 시점을 고정시키지 않고 복수(複數)의 시점에서 움직임을 파악하려고 하였다. 예컨대 “질주하고 있는 말의 다리는 4개가 아니라 20개이다”라고 주장하고, 잔상(殘像)에 주의하면서 보고 있는 것과 기억하고 있는 것을 종합함으로써 관객을 화면의 중심으로 몰아넣으려고 하였다.  구체적인 방법으로서는 여러 시점에서 파악한 이미지를 같은 화면에 중복시키고 그러면서도 ‘역선(力線)’이라고 불리는 힘찬 선으로써 형체의 추이(推移)를 뚜렷하게 새겨넣는다. 그들은 이것을 ‘면(面)의 상호침투’라고 부르고 ‘물리적 초월주의’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현대도시의 ‘환경’이 의식화되고 일상생활과 예술의 상호침투가 주장되었다. 특히 보초니는 공업소재의 적극적인 활용에 의한 공간구성으로 환경의 새로운 창조를 시도하여 50년대 후반부터 전개되는 움직이는 예술과 빛의 예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밖에도 카라에 의한 선언 <음향·소음·냄새의 회화>(1913)나 마리네티의 선언 <촉각주의>(1921) 등이 있으며, 시각뿐만 아니라 여러 감각에 호소하여 전체적인 현실을 표현하려고 한 미래주의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요절한 건축가 A. 산텔리아의 미래도시의 계획은 새로운 공업소재에 의한 거대한 기계와 같은 도시를 상정(想定)하고 있어, 미래주의가 어떤 면에서는 현대도시의 양상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래주의자들에게서 찬양받고 숭상되던 것은 기계미였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에 두드러진 주제는 바로 도시대중과 기계문명, 또 이것들을 상징해서 보여주는 <속도>였다. 이 속도미의 표현을 위해 이들은 초기에 신인상주의 분할주의를 택하게 되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자 당대(1910년 전후)의 새로운 미술운동이었던 입체주의 기법을 차용하게 된다.  미래주의자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역선(foce-line)의 추구, 대상의 공간으로서의 역동적인 침투, 그리고 시각 뿐만 아니라 청각과 후각의 감각까지도 포함시키려는 노력 등은 충격적이었고 입체주의 화가들의 탐구와 비교가 되었다. 미래주의자들은 입체주의에서 유래된 기하학적 형태의 파편화, 불연속성, 그물과 같은 구조 등을 사용했으나, 색채를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고 선은 유동적이고 감정적인 효과를 가진다. 미래주의 화가들이 한편 주제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역시 입체주의자들과 입장을 달리했다.  입체파 화가들과 미래주의자들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파편적이고 다원적인, 역동적인 세계관의 기조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미래주의 운동은 당대 이탈리아의 정치사회적인 배경 ㅡ"기계문명을 예찬하고 그것의 상징인 속도를 숭배한 것은 과거를 거부하고 새로운 산업사회로의 도약을 위한 것이었다"ㅡ 아래 전개되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탈리아만의 국지적인 조건 말고도 이 당시 전유럽을 동요시킨 새로운 흐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니체와 베르그송을 비롯한 생철학과, 프로이트의 심리학,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서구 전통 세계관을 뒤엎는 가히 혁신적인 세계관의 등장이 그것이었다. 입체주의/미래주의 운동 뿐만 아니라, 20세기 초에 벌어졌던 일련의 전위예술운동 즉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건축, 무용, 문학, 영화 등은 이러한 당대의 새로운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들의 그림에서는 그들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입체파 작가들과는 달리) 색체를 중시여기고 또 역선(force-line)을 도입해 상당히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러한 미래주의자들의 기계미 예찬과 영웅주의는 결국 파시즘과 조우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결국 공업화를 서두르고 있던 후진국 이탈리아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고, 힘찬 것에 대한 성급한 찬미는 결국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결부되었으나, 현대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데 커다란 역활을 하였다. 기계문명이 가져온 젊음, 기계, 운동, 힘, 속도를 찬양하고 이를 새로운 미(美)로써 표현하려 애썼던 미래주의는 전쟁을 세계의 유일한 위생수단 이라 말하였지만, 1914~18년의 전쟁은 미래주의의 종말을 가져왔고, 미래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보치오니와 상텔리아는 전쟁 중 전사하였다. 전후 남은 작가들은 보다 전통적인 양식과 태도로 옮겨갔고, 1918년 이후 쇄신하려는 기도는 있었으나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미래주의의 영향은 여러 작가와 다양한 운동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특히, 다다와 러시아의 아방가드르 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변화와 생성과 흐름의 세계
 1910년 전후의 입체파적/꼴라주적 예술운동과 미래주의 운동 의 전개에는, 변화와 생성을 긍정하는 -다원주의 세계관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이 그 형성배경이 되었다. 이른바 니체와 베르그송의 생철학이 그것이다. 니체는 기독교적 윤리와 국가주도의 전체주의적 사고를 비판하고, 뛰어난 개인(초인)의 역량과 본능에 충실한 삶을 강조했으며, 베르그송은 생을 변화-지속하는 것으로 간주하였고 이는 오성이 아닌 직관에 의해 인식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전통적인 철학에서 비가치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본능>과 <생성>과 <흐름>은 이제, 긍정적인 가치로서, 일차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서 재평가 받게 된 것이었다. 특히, "베르그송의 시간과 공간 해석에서 '사물은 결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라는 명제는 화가들에게 <변화>를 중요시하게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의 상호침투나 정적인 것에서 동적인 것으로의 변화 등, 베르그송의 시간과 의식의 <지속론>은 미래주의와 역동성 표현" 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의 오르피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또한 니체의 초인 사상과 베르그송의 도덕, 종교철학의 드러난 바에 의해, 미래주의자들은 그들의 과격한 정치적 실천의 암시를 읽어내었다. "초인이 갖는 힘의 의지나 투쟁의식 즉, 투쟁은 자연의 섭리요, 투쟁은 자연 속에서 힘의 균형과 생명체 보존을 돕는 수단이라는 내용을 <미래주의 선언>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후에 미래파가 파시즘과 연결되는 고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무의식의 발견
 철학의 영역 뿐만 아니라 물리학과 심리학의 영역에서도 전통의 관념을 뒤엎는 이론체계가 열린다. 아인슈타인(상대성이론)과 플랑크(양자론) 등에 의한 물리학과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그것들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즉, 시간이 확장하면 공간이 수축되고 오히려 물체가 있음으로써 공간이 생긴다는 그의 혁신적인 이론은 바로 근대를 지배해왔던 뉴턴 물리학의 전면적인 부정인 셈이고, 막스 플랑크의 양자론(흑체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연속적이 아니라, 불연속적이라는 주장. 에너지 양자라는 것이 있으며 빛은 일종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라는 것. 후에 하이젠베르크 등에 의해 양자역학으로 이론적 완성을 본다) 역시 연속적이고 확정적이고 닫힌 세계에의 이해를 거부한다.  또한 인간 내면에 대한 이해 역시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발견>으로 달라지게 된다. 그는 의식현상으로 설명되지 않은 현상(말 실수,히스테리 등)을 무의식이라는 또 하나의 의식으로 설명하는데, 합리적인 면 보다 본능적인 것(특히, 리비도)이 오히려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이성에 의한 <합리적 인간>이라는 전통의 인간관은 부정이 된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정되고 확정된 것으로 여겨졌던 물질 세계는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에 의해 상대적이고 불확정적인 것으로 밝혀졌고, 통일되고 투명한 것으로 여겨지던 의식/이성은 무의식의 발견으로 분열되고 완전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는 물질 세계 뿐만 아니라, 정신 세계 역시 안정되고 확정적이지 않다는 충격을 몰고 왔다. 또한, 전통적인 서구철학에서 본능과 변화는 비인간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으로서 배제되었었는데 -니체와 베르그송 등에 의해- 오히려 이것이 본질적인 것으로 새로이 이해되었던 것이다.
  꼴라주 문화와 "동시성"의 체험시대
 이와 같은 20세기초의 급격한 세계관의 변화는 단지 사상계의 동요만을 몰고 온 것이 아니라, 예술 전반의 영역에 큰 파장을 초래했다. 이질적이고 불연속적이며 다원주의적인 세계관과 대응하는 당대의 문화는 바로 '꼴라주'였다. "꼴라주가 현대 도시인의 삶의 체험을 전달하는데 매우 적합한 기법이라고 찬양"한 아뽈리네르의 시(그는 단편적인 말들을 모아서 독특한 방법으로 그의 시에 병치시켰다. 이런 그의 詩作 역시 일종의 꼴라주인 셈)와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이 그러하며, 음악의 경우 역시 (미래주의 음악에서 그 예를 보았듯이)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에 다른 종류의 소리들을 첨가하는 방법을 실험하였다(타자기, 전화기, 경찰의 호르라기, 자동차의 경적 소리 등을 수용했다). 영화에서도 공간, 시간, 그리고 시야의 한계를 임의로 무시할 수 있는 합성적 작업을 시도하였는데, 이는 바로 몽타쥬 기법이었다. 20세기초의 사상과 예술과의 이러한 관련성은 하우저의 논의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하우저는 이를 "동시성의 체험"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우저는 상기의 책에서 현대예술에 나타난 현대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즉, 기술문명의 발달로 현대인은 이제 다양한 체험을 동시간에 할 수 있으며, 그래서 동시성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현대의 삶이라는 것이다. 베르그송에 의한 <시간과 의식의 흐름>論은 바로 이러한 동시성의 체험이라는 현대성을 이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장르는 무엇보다 영화라고 했다. 그는 위 책에서 영화의 다양한 기법들, 이를테면 오버 랩이나 페이드 인/아웃, 특히 몽타쥬 기법 등이 바로 그러한 예라고 소개한다. 더불어, 프루스트와 조이스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의식의 흐름>기법이나, 당대의 전위미술 운동, 즉 입체파의 큐비즘과 꼴라주, 미래파의 역동성주의와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Automatism) 역시 이러한 현대의 동시성 체험과 이에 따른 다원성과 역동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불연속성이나 복잡성, 다양성을 긍정하는 세계관은 불연속성과 이질적인 방법들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예술의 관행적 표현(넓은 의미의 꼴라주)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의 파편적이고 역동적이며 다원주의적인 회화직품은 바로 이러한 시대성과 맞물려 일어났던 것이었다.
  미래주의의 작가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1882~1916) 자코모 발라에게 회화 수업을 받았다. 초기에는 발라의 영향으로 산업화된 도시 풍경들을 분할주의 기법으로 그렸다. 가장 재능이 뛰어나고 가장 창의성 있는 작가였다. 1910년경 회화에 일체주의(Unanimism)를 접목시키고 있으며, 이는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의 표현보다는 집단의 의지나 운동감의 표현을 의미하고 「대회랑의 폭동」,「일어나는 도시」등이 이에 속한다. 새로운 도약은 입체주의를 알게 된 후로, 분할주의의 색점에서 벗어나 입체주의의 서로 교차되는 파편들로 운동감과 음향, 공간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된다. (「집으로 밀려드는 거리의 소음」)  1912년 4월 11일 「미래주의 조각선언」을 발표하였다. 상당수의 조각작품이 미래주의 회화에서와 똑같은 종류의 이질적인 대상들(머리, 창문, 광선)의 상호 침투를 많이 이용하였다. 「공간 속에서의 연속성의 특이한 형태」,「공간속에서의 병의 전개」같은 작품은 대상의 구조에 내재한 에너지를 드러내고 대상을 주변공간 속으로 용해시키기 위해 형태를 열어서 드러내 보이려는 보다 근본적으로 조각적인 시도를 보여주었다.
카를로 카라(Carlo Carra 1881~1965)
 입체주의 (분석적 & 종합적)에 가장 가까운 작가였고, 전쟁기간을 통하여 초기 르네상스의 거장들의 세계에 빠져 들면서 일종의 시적인 사실주의로 나아갔다. 「무정부주의자 갈리의 장례식」
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 1883~1965)
 입체주의적인 평면들을 분할주의적인 색채 표현에 결합시킴으로써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발레리나 +바다」같은 식의 설명적인 제목이 붙는 작품들을 했다.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1871~1958)
 추상 경향을 띈다. 「가죽 끈에 목이 매인 개」는 19세기 말엽 머이브리지(Muybridge)와 그외 몇 사람의 운동에 관한 사진 연구를 모방한 미래주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품의 상당부분이 대체로 동작의 직관적 평가를 추상적 패턴을 통하여 찾아내는데 바쳐져 있다.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 1885~1947)
 운동과 동력의 상징으로 충격파 (shock-waves)라고 부르게 된 것을 탐구적으로 나타낸다. 화가 보다는 작곡가로 기억되며, 소음을 내는 기계들을 발명 기계적 동력의 시대에 맞는 음악을 창조하려 하였다.
안토니아 산텔리아(Antonia Sant'Elia 1888~1916)
 건축을 미래주의적 경지에 들어서게 하였고, 1914년 7월 11일 「미래주의 건축선언」을 발표하였다. 새로운 종류의 대도시를 제시 하였는데, 과거의 양식들을 참고하지 않고 신속한 수송 시대의 새로운 인구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계 공학의 새로운 재료와 구조적 창안들에 맞추어 디자인하였다. 철근 콘크리트,철재, 유리들과 그 밖의 모든 목재, 벽돌 및 석재를 대신 하는 재료들을 쓴 건축을 요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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