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山水畵)
겸재 정선(1676 ~ 1759) '서울 장안의 안개비'
자연의 경치를 주제로 그린 동양화. 인물·화조(花鳥)와 함께 많이 그려진다. 산수·수석(樹石) 등 자연의 경치를 그린 것으로, 풍물로서 인물·누각·풍속 등이 포함되며 사계절과 짝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수묵화에 적합하며, 산수화의 역사는 수묵화와 거의 비슷하다. 중국에서는 한대(漢代) 무렵까지 신선도(神仙圖)의 일부분으로서, 또 독립된 산수화의 경우에도 종교적인 상징의 의미를 띠고 그려졌다. 육조시대(六朝時代)에는 고개지(顧愷之)의 《화운대산기(畵雲臺山記)》 등 산수화론도 나왔고, 사혁(謝赫)은 《고화품록(古畵品錄)》에서 산수화의 요체가 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을 화육법(畵六法)의 첫째로 꼽는 등 그 때 이미 산수화의 개념이 확립된 것으로 추측한다. 실제로 당대(唐代)에 이르러서는 산수화분야가 정착되고 왕유(王維)·이사훈(李思訓)·오도현(吳道玄) 등이 수묵이나 채색한 산수화를 그려 화풍상 남종화(南宗畵)와 북종화(北宗畵)의 두 경향을 낳았다. 특히 남종화는 문인들이 좋아하는 그림영역으로서 그 후 문인화(文人畵)의 개념이 여기서 발생했으며 북송대(北宋代)에 이르러 전성을 이루었다. 북송의 이성(李成)·곽희(郭熙)·동원(董源)·거연(巨然) 등은 종합적으로 자연의 대관(大觀)을 파악하는 경향이 짙었으며 곽희가 산수화의 세 가지 원칙인 ‘삼원(三遠)’을 주장하는 등 화론도 발달하였다. 남송대(南宋代)에는 조정에 설치한 화원(畵院)에서 근엄한 필법의 그림을 환영하였고, 이당(李唐)·마원(馬遠)·하규(夏珪)·양해(梁楷) 등의 화가가 자연의 절편(截片)을 따서 여백과 대응시켜 자연의 참모습을 찾으려는 변각적(邊角的)인 구도법을 채택하여 소품(小品)의 걸작을 낳았다. 이 시대에는 목계(牧谿)·왕간(王澗) 등 화승(畵僧)의 활약이 컸으며, 한국과 일본에 전해져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원대(元代)에는 사대가(四大家)로 불리는 황공망(黃公望)·예찬(倪瓚)·오진(吳鎭)·왕몽(王蒙) 등이 나와 문인화의 지위를 높였다. 명대(明代)에는 거의 화원의 흐름을 따른 절파(浙派)와 원(元)의 사대가의 흐름을 이어가는 심주(沈周)·문징명(文徵明) 등의 오파(吳派)가 있었는데, 후자의 계통에 사왕(四王:王時敏·王鑑·王·王原祁), 오운(吳5:吳歷·5格)이 나타나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남종화풍을 번성케 하였으며, 동기창(董其昌)의 《상남폄북론(尙南貶北論)》 등이 나온 이후는 문인화로서의 남종화풍이 번성하였다. 한국 미술사상 회화가 가장 활발하게 제작된 시기는 조선시대인데, 화풍형성에는 고려시대로부터의 전통과 중국에서 전래된 역대의 화풍들이 토대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고려시대의 작품에는 노영(魯英)의 《지장보살도》, 이제현(李齊賢)의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와 공민왕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수렵도》 등이 있으며, 그 밖에 고려시대에 일본에 전해졌다는 산수화가 몇 점 있다. 이 작품들은 북송대 산수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 산수화가는 안견(安堅)과 강희안(姜希顔)이며 그 후 최경(崔涇)·배연(裴連)·안귀생(安貴生)·이상좌(李上佐) 등이 배출되었다. 안견은 조선 전기 및 중기의 산수화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독자적 화풍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 중기의 산수화가로는 김시(金?·이불선(李不善)·함윤덕(咸允德)·윤인걸(尹仁傑)·이흥효(李興孝)·이경윤(李慶胤) 등으로, 안견파의 화풍과 중국 절파의 화풍을 이어받아 각각 독특한 화풍을 이룩한 화가들이다. 조선 후기의 산수화는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중기 이후 계승되어 온 절파계통의 화풍을 비롯한 전통적인 화풍, 역시 중기에 소극적으로나마 수용되기 시작하여 후기에 이르러 유행된 남종계 산수화풍, 그리고 정선(鄭敾) 일파에 의해 풍미된 진경(眞景)산수화이다. 그러나 전통성이 강한 절파계의 화풍은 새로 유행하게 된 남종화풍과 진경산수화풍에 밀려 쇠퇴하였다. 이 시대 산수화의 새로운 경향은 당시를 풍미하던 민족적 자아의식과 사조를 바탕으로 하여 종래와 다른 기법을 발전시킨 점이 매우 괄목할 만하다. 윤두서(尹斗緖)· 정선·심사정(沈師正) 등 삼재(三齋)로 일컬어지는 이 시대의 화가들은 소극적이기는 하나 새로운 화풍을 모색하면서도 전통화풍에 집착한 화가들이며, 강세황(姜世晃)·이인상(李麟祥) 등은 남종산수화를 발전시킨 화가들이다. 이보다 조금 늦게 나타나 독자적인 화법으로 남종산수화를 크게 발전시킨 화가는 김홍도(金弘道)이다. 그의 《산수도(山水圖)》는 그의 종합적인 화풍을 잘 나타냈으며 그의 화풍은 아들 김양기(金良驥)와 신윤복(申潤福)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 조선 후기에는 남종화풍이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이 때를 대표하는 사람은 김정희(金正喜)이다. 서(書)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는 《세한도(歲寒圖)》에서 산수화의 독특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조선 후기의 화단을 마지막으로 꽃피운 화가는 장승업(張承業)과 안건영(安健榮)이다. 장승업은 강렬한 필법과 묵법(墨法)으로 유명하며 그의 화풍은 근대화가의 대표적 존재인 안중식(安中植)과 조석진(趙錫晉)에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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