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Salon)
미술에서는 살아 있는 화가나 조각가들의 연례 전람회를 가리킨다. 처음에는 문인들과 함께 미술가들도 모여 그 작품을 공개, 감상 비평하던 것이, 나중에는 많은 작가들이 출품하는 정기적 미술전람회를 가리키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대표적인 살롱으로는 ‘살롱데쟁데팡당(Salon des Independants)’ ‘살롱데튈르리(Salon des Tuileries)’ ‘살롱드메(Salon de mai)’ ‘살롱도톤(Salon d’automne)’ ‘살롱데레알리테누벨( Salon des realites nouvelles)’ 등이다. ‘살롱데쟁데팡당’은 관선 단체인 ‘프랑스 미술가협회’ 에서 해마다 5∼6월에 열리는 살롱의 아카데미즘에 불만을 품은 진보적 미술가들이 1884년에 ‘ 독립미술가협회’를 조직, 무감사제의 전람회로서 출발한 것으로 해마다 봄에 열린다. 1923년에 창설된 ‘살롱데튈르리’는 매년 가을에 열리며, 루오·블라맹크·뷔페 등이 그 출품작가이다. 매년 5월에 열리는 ‘살롱드메’는 항독(抗獨) 운동에서 싹터 1845년에 제1회전을 가졌으며, 추상주의·초현실주의 화가들을 비롯한 전위작가들이 모이는 초대전으로 마티스·로트·비용 같은 대가들도 출품해왔다. 가을에 열리는 ‘살롱도톤’은 1903년에 비롯되어 야수파·입체파의 온상이 되었으며, 그림 외에도 조각·건축·판화·무대장식 등의 부문도 들어 있다. 브라크· 피카소·마르샹 등이 출품했던 곳이기도 하다. ‘살롱데레알리테누벨’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생긴 추상파 미술가들의 전람회로 외국 작가들도 참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1667년에 콜베르가 기획해 팔레롸얄의 안마당에서 생존 작가들의 그림을 일정 기간 동안 전시한 것이 최초의 살롱이다. 아카데미 주최의 이 전람회는 1897년에 루브르궁의 그랑 갈르리로 옮겨졌으며 루이 14세 치하에 10회 가량 열렸으나 출품이 부진해 명맥만 이어오다가, 루이 15세 치하인 1725년에 이르러 루브르궁의 살롱 카레에서 본격적인 관전(官展)으로 부활, 1837년 이후 본궤도에 오르면서 대규모 살롱으로 발전하여 1873년까지 전후 25회를 거듭함으로써 미술발표기관으로서의 살롱의 기능을 확립해 놓았다. 1889년의 대혁명을 계기로, 살롱은 그 민주화가 선언되는 등 기구나 장소의 변천은 있었으나, 미술가들과 시민을 맺어주는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서 19세기 중엽 이후까지 존속되어 근대적인 미술비평의 온상 구실을 함으로써 그 역사적인 의의가 크다 하겠다. 그러나 엄격한 심사제를 견지한 살롱의 관료적인 아카데미즘은 진보적인 미술운동을 외면함으로써 미술 발전의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비난도 사게 되어, 마침내 1883년에는 출품자 중에서 뽑힌 90명이 심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개편, ‘프랑스 미술가협회(Societe des Artistes Fran뛞is)’의 살롱으로 변신되어 매년 봄에 개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에도 만족하지 못한 진보파들은 다시 1884년에 ‘ 독립미술가협회(Societe des Artistes Independants)’를 조직하고 무감사제인 ‘살롱데쟁데팡당’ 을 가지게 되었다.
'미술이론 Open강좌 > 미술용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원(三遠)/삼원법 (0) | 2012.10.15 |
---|---|
삼실총(三室塚) (0) | 2012.10.15 |
산수화(山水畵) (0) | 2012.09.25 |
산수인물화(山水人物畵) (0) | 2012.09.25 |
산배화사(山背畵師:야마시로 에시) (0) | 2012.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