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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론 Open강좌/미술용어

공예 ( 工藝 ) - 미술용어

by 태풍되고픈천둥 2012. 7. 12.

 

공예 ( 工藝 )

 

 실용적인 물건에 장식적인 가치를 부가함으로써 그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 미술. 넓은 뜻으로 미술 또는 조형예술의 한 부문으로 순수미술로부터 구별하기 위해, 19세기 중반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현재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뜻으로서의 공예도 서양문명이 들어온 뒤에 받아들인 것이다. 그것은 art 또는 fine art가 미술이라고 번역되었을 때, ‘craft’ 또는 ‘technology’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말이 공예로 번역된 후부터 쓰여졌다. 공예라는 말은 옛날 중국에서도 있었으며, 현재의 기술이란 말과 거의 같은 뜻이었다. 더 넓게 공예란 활을 쏘거나 말을 달린다, 글씨를 쓰거나 셈을 한다, 그림을 그리거나 기물을 만든다, 바둑을 두거나 도박을 한다는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한자의 공예라는 말의 원뜻은 지금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어떤 기술로 물건을 잘 만든다는 뜻이니, 훌륭한 솜씨로 도구나 기물을 만드는 것이 공예의 일부라 생각되어 사용하였던 것 같다. 동양에서 공예라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서양은 이미 산업혁명을 겪고 근대공업이 뿌리를 내린 때여서, 서양에서도 공예의 개념은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채 동양에 들어온 것이다. 기계공업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때에는 회화·조각·공예 등이 모두 사람의 손으로 제작되었으므로 상호간에 구별없이 혼연일체가 되어왔다. 그러나 회화나 조각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계공업화로 인하여 공예품이라고 하는 제품은 기계로 만들어내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의 손에 의한 것보다 질이 떨어지고 조악해지자, 순수미술과 구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회화나 조각의 순수성을 강조한 나머지, 공예에는 미 이외의 사용목적이 있다는 불순성을 지녔다 하여, 마치 공예가 다른 조형예술에 비하여 열등하다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공예가 순수미술보다 열등한 것은 아니지만, 두 가지를 구별한 것은 BC 300년경 로마의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의 활동형식의 삼분법사상(三分法思想)을 계승한 주장에서 비롯된다.

 포이에시스[製作]에도 기술적 계기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포이에티케[製作術]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미술처럼 일단 제작하면 오랫동안 지속되는 작품을 제작하는 예술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일상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생산기술도 포함된다고 하였다. 이 기술이 바로 공기(工技) 또는 공예이다. 이러한 사상이 2000년간 관념적으로 지속되었으나, 산업혁명 이후까지 양자간에 순수니 비순수니 하는 엄격한 구별없이 공존해왔다. 그러나 공예가 기계의 조작에 맡겨지자, 다시 이 생각이 현실적으로 대두되어 논의대상이 되었다. 회화나 조소 등 예술작품은 미적으로 향유하고 받아들이지만, 일용품은 유익하게 소비되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일용품의 제작술은 효용가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지만,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기술은 미적 가치의 산출을 목적으로 하며, 그 이외의 목적은 가지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이런 논리 속에 나타나는 효용가치란 공예를 통해 제작되는 작품의 기능을 말한다. 이것은 또 쓰임이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공예를 설명하는 데도 여러 가지가 있다. 뛰어난 솜씨를 보이는 도구류를 공예품이라고 생각하거나, 조형예술의 산업화를 공예라고 하거나, 도구나 기물에 미술적 장식을 가하는 것을 공예라고 하거나, 조형적 아름다움을 가지는 광의의 도구를 만드는 인간활동을 모두 공예라는 생각은 각각 그 시대의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 설명 중에서 공통점은 쓰임 이외에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장식면은 물론,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뜻도 있다. 그런 것을 만들어내는 수단은 기술의 변천에 따라서 변한다. 이러한 전체가 공예라는 인간활동으로 생각할 수 있다.

 기계의 발달로 공예를 순수미술에서 구별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일어났으나, 오늘날에는 기계공업이 또 공예의 영역에 밀고 들어왔다. 그리하여 공예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놓았다. 하나는 화가나 조각가의 뒤를 쫓아 스스로 미술 아카데미에 참가하려고 노력하여, 전람회용의 유일한 작품제작에 주력하는 미술공예가이다. 그러나 공예는 인간생활에 효용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이런 작품은 생활과 유리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 모순이 있다. 둘째는, 공업의 발달로 많은 제품이 쏟아져나오는 세상을 외면하고 분업조직의 구석에서 단순한 손끝의 재주만을 이용하는 영세공예가이다. 다른 하나는 디자이너로서 산업계의 분업조직에 적극 참여해서, 자기의 창의성을 제품에 표현해 보려는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손에 의지해야만 비로소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기계발달에 따라서 기계가 손을 대신하게 되었다. 기계는 손보다 더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정확하게 생산하기 때문에, 현대 인간생활에 쓰이는 것은 주로 기계가 만들어내게 되었다. 공업생산에 의하더라도 제품은 역시 아름다워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산업디자인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하여 여기에 공예가들이 참여할 터전이 생긴 셈이다.

 공예도 일부의 공업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데는 미술의 원리가 응용된다는 뜻에서 이것을 응용미술(applied art)이라 한다. 인간생활에서 쓰이는 도구제작을 공예활동이라고 생각할 때, 그 광의의 공예는 매우 넓은 영역으로 확대된다. 편의상 이 광의의 공예를 분할하여, 그 속에서 좁은 뜻의 공예영역을 구분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것은 순수미술·공예와 공업· 디자인의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순수미술은 자체의 미적 가치에 존재 의의가 있기 때문에 공예에서 발전, 독립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대량생산이나 기계·기기의 생산을 목적으로 공업이 발달하여, 공예에서 독립해나갔다. 그리하여 현대공예는 공업이나 순수미술과의 상관관계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술은 미를 창조하고 싶다거나,진실을 표현하고 싶다는 인간의 마음(Heart)을 중심으로, 지성과 손(Hand)의 기술이 결합되어 제작된다. 공예는 숙련된 손의 기술을 중심으로 지성과 마음이 엮어져서 이루어진다.

 공업의 산업디자인은 지성(두뇌:Head)을 중심으로 마음과 기술이 결합되어서 이루어진다는 설명이 근래 대두되고 있다. 이를 3H라고 한다. 세 분야는 각각 마음·손·머리가 중심이 되어 비로소 활동이 시작되지만, 각각의 영역이 서로 교차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는 무엇이 중심이 되는가가 문제이다. 아무리 손재주가 있고 머리가 좋아도 작가정신이 없으면 미술작품이 될 수 없다. 손의 기술이 숙련되지 않고는 본격적인 공예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바랄 수도 없다. 치밀한 계획 없이 공업이 성립되지는 못한다. 이 세 가지가 중복성이 있는 것처럼, 각각의 제품도 서로 중복되는 면이 있다. 이 중복된 부분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미술이 되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공업이 되며,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공예가 되는 영역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공업적 미술이나 미술적 공업이 존재하는 것처럼, 공예적 미술이나 공예적 공업도 존재하는 것이다.


【공예의 기원】

 선사시대의 인간이 어떤 생활을 하였는가를 알아보자면 그들이 살던 집터나, 그들이 묻힌 분묘,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되는 그들의 도구 등을 통하여 그 면모를 더듬어볼 수 있다. 석기·골기·토기 등이 그 주류를 이룬다. 풍화나 부식이 잘 되지 않는 석기류가 제일 많다. 패총 같은 데서 이런 것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가 출토되고 있다. 이렇게 출토되는 자료들은 거의 당시의 생활에 필요하였던 도구들이다. 이 도구들은 사람의 손발의 기능을 더 확대, 연장하여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능률을 더해줌으로써 많은 생산량을 올리는 데 사용되었다. 보다 많은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석부(石斧)·석촉(石)·석도(石刀)·석검(石劍) 등을 만들었다면 손으로 사냥하기보다 힘을 덜 들이고 더 많은 것을 잡았을 것이다. 뼈로 만든 낚시바늘이나 옷을 만드는 데 쓰인 바늘, 그리고 먹을 것을 담는 토기 등도 모두 그들의 일상생활에 긴요하게 쓰였다. 이와 같은 도구를 만드는 지혜로 더 새로운 것을 발명해갔다.

 최초에 생긴 석기는 타제석기였다. 더 단단한 돌로 두들겨서 필요한 곳에 날카로운 날을 만들어 썼다. 그것도 손으로 잡기 위해서나, 자루를 달아매기에 어울리는 형태로 만들기 위해 모양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벌써 쓰임뿐만 아니라 미(美)도 의식하였다는 혼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제석기를 만들게 된 때에 이르러 그 경향이 더 뚜렷해졌다. 도구의 효용가치가 높아지면 그만큼 생산성도 커진다. 따라서, 살림도 넉넉해지고 여가시간도 더 많아진다. 그 시간은 도구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쓰였다. 마제석기의 균형잡힌 아름다움이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토기들도 보다 더 아름다운 무늬를 넣게 되고 모양도 좋아졌으며, 농경을 알게 되고 부터 이 경향은 더 뚜렷해졌다. 청동기문화가 싹트면서 인간이 도구를 아름답게 하려는 욕구는 더 커졌다. 철기 등 다른 금속을 다루게 되면서, 이 도구들의 기능면뿐만 아니라, 구조나 장식도 더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에서나 이 두 가지가 꼭 같은 비중으로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서 기능적인 요소가 또는 장식적인 요소가 더 요구되기도 하여, 각각 다른 형태의 공예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한 문화가 일어날 때에는 보다 기능적이며 힘찬 형태의 것이 만들어지지만, 그 전성기를 지나면 더 사치스럽고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지기도 한다. 이것은 그 문화의 주인공인 인종의 성격에서 그 차이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곤 한다. 유럽에서 라틴 인종의 남방계 문화에서는 장식적 요소가 두드러지지만, 게르만 인종의 북방계 문화에서는 기계적 요소가 더 짙다는 식이다. 이것은 르네상스와 고딕, 로코코와 현대, 아르 누보와 제체시온 운동 사이에서도 역시 발견된다. 이 요소들은 공예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며, 시대의 기호나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늘 여러 모로 변천해왔다. 이 두 요소의 관계를 보면, 기능에 대한 요구가 만족되면 비로소 미에 대한 요구에 눈을 뜨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능과 쓰임에 주력하던 원시적 제작이 미와 장식을 의식하게 되는 단계에 와서 비로소 고대공예의 꽃이 피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근대공업이 제품의 미를 자각한 때, 현대공예가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쓰임의 목적을 충족하면 미에 대한 충족도 혼히 이루어져오지만, 때로는 미에 너무 기울어져 균형을 잃은 시대도 있었다.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부의 축적과 권력의 지배가 이루어지면, 공인(工人)들이 권력자를 위해서 여러 장식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장식은 더욱 번창하게 된다. 고대 서양의 여러 왕조, 즉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미케네에서 번영한 장식예술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장식과 기능, 미와 용의 균형이 깨지고, 장식을 위한 장식, 미를 위한 미가 태어나게 된다. 사람들은 이런 권력자가 소유하였던 화려한 유품에서 공예문화를 생각하지만, 공예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능과 장식, 용과 미의 올바른 균형에서 비로소 아름다워지고, 생명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기계공업과 공예】

 산업혁명 이후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은 미를 도외시한 조잡한 제품을 세상에 범람시켰다. 이 기계문명과 상업주의에 도전하여 생활의 미와 시대의 조형양식을 지키려고 한 세력은 영국의 W.모리스의 공예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기계의 기능과 장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중세양식의 부활로 그치고, 새로운 공예양식의 창조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이 흐름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아르 누보 운동은 파리에서 호평받았다. 그러나 기능이나 구조와는 하등 유기적 관계없는 표면장식에 시종하여 일시적 유행현상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빈에서 일어난 제체시온 운동도 독일로 퍼지면서 활발히 움직였으나, 간결한 직선양식을 구사한 일종의 장식주의에 빠져, 올바른 기능조형의 창시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바우하우스 운동의 지반이 되었다. W.모리스의 운동에 자극받아 일어난 독일 공작연맹운동은 괄목할 만하다.

 그들은 기계생산을 긍정하는 입장에 서서 미술과 산업을 연결시켜 새로운 조형양식을 지향하였다. 그들은 공예란 애매한 용어를 버리고, 공작이란 용어를 내세워 양질생산이란 형태로 신시대의 조형문제의 핵심을 바로 파악하였다. 이 결과, 독일의 큰 회사들이 그들을 끌어들여 여러 부문에서 혁신을 이루었다. 이 운동의 성공은 산업계를 부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밀착시켜나간 점에 있다. 여기에서 성장한 그로피우스가 창시한 바우하우스는 국제적인 디자인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여기에서는 극히 진보적인 디자인 실험이 꼬리를 물고 이어나갔다. 건축이나 공예를 기능과 재료와 현대기술의 기반에서 짜올리려는 경향으로 일관하였다. 현대 과학공업의 바탕 위에서 조형이나 생산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 운동은 20세기 조형미학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것과 함께 보아야 할 것은 르 코르뷔지에 등의 에스프리 누보 운동일 것이다. 그들 사상과 주장에서 나오는 결론은 살기 위한 집, 앉기 위한 의자, 쓰기 위한 만년필이라는 것과 같이 인간의 손발이 되며, 그 연장이 되는 도구와 기계만이 이제부터 진정 필요해진 공예이며 건축이라는 것이다. 역시 기능주의의 하나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른바 산업디자인 운동이 세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대전 전부터 선구적이라 할 산업디자이너를 배출하였지만, 국제적 평가를 받을 만한 조형양식을 확립하기 시작한 것은 전후(戰後)부터였다. 대전 전에 나치스의 박해로 미국으로 망명한 바우하우스 지도자들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영국도 H.트리드의 감화로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겨우 디자인 문제가 국책으로 다루어져, 세계에서 가장 완비된 공업디자인 심의회가 탄생되었다. 기계생산이 고도화됨에 따라, 현대공예의 주류는 양산에 적응한 산업디자인이 되어, 기능주의·능률주의·방리주의가 지배적 위치를 굳혔다. 그리하여 규격화·기계화에 반발하여 수공예(craft)의 장점을 적당히 응용해서, 자유로운 조형을 얻으려는 모던 크래프트가 탄생하였다. 이와 같이 크래프트에서 생기는 디자인은 산업디자인에 대립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젠 아르 누보에서와 같은 전통기술에의 복귀도 아니고, 역사양식의 장식화도 아니며, 현대의 기능주의와 즉물정신(卽物精神)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또 화가나 조각가에 의한 디자인 분야에서의 실험도 모던 크래프트와 같은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공예가 성립하는 조건】

 공예를 성립시키는 직접적 요소에는 재료·가공기술·의장 등의 세 가지가 있고, 이것이 잘 어우러져 통합되어야 한다. 물건을 만들려면 먼저 재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만드냐에 따라서 재료의 종류도 달라진다. 그것이 무엇에 쓰일 것인가, 또는 어떤 형태이며, 어떤 아름다움을 구하는 것인가에 따라 거기에 적합한 재료를 선택해야 한다. 고대에는 자연에서 그것을 찾아야 하였으며, 자연의 돌이나 흙·나무, 동물의 가죽이나 뼈가 재료로 사용되었다. 금속을 쓸 줄 알게 된 후부터 금·은·구리·철·납과 같은 것이 쓰였고, 또 그것을 합금하여 재료로 사용하였다. 흙과 돌로 만든 토기·도기·자기·유리 같은 것도 다른 공예의 재료가 되었다. 나무도 이제는 자연 그대로를 쓰지 않고 합판(plywood)이나 나무가루를 굳혀서 만든 합성목재나, 목재에 합성수지를 침투시킨 개량목재 등이 새로운 재료로 등장하였다. 발달한 과학의 산물로 재료는 자연적 재료로부터 인공적 재료로 개량되어 합성수지 등 수많은 새로운 재료들이 나왔다. 그러나 재료만 있다고 그대로 도구나 물건이 될 수는 없다. 즉, 재료를 가공하지 않으면, 그것은 재료 그대로 남는 것이다. 가공하는 데는 어떤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을 끊거나, 두들기거나, 늘이거나, 녹이거나, 파거나, 이어 붙이는 기술을 적용시켜야 비로소 어떤 형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재료든 그것에는 각각 그것을 다루는 기술이 있게 마련이다. 나무를 다루는 기술로 쇠를 다룰 수는 없으며, 유리를 다루는 기술로 합성수지를 다루지는 못한다. 종이에 색채를 인쇄하는 기술과, 천에 물감을 들이거나 무늬를 염색하는 기술은 전혀 다르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원시시대에도 의도적으로 물건이 만들어지는 한 거기에 상응하는 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재료와 가공기술만 있다고 하여 자연히 도구나 기물이 되지 않아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어떤 재료를 어떤 기술로, 어떠한 것을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계획이 없다면, 재료와 기술이 제대로 이어질 수 없다. 이 계획설계를 의장(意匠:design)이라고 할 수 있다.

 공예는 기능을 충족시키는 도구를 만드는 것인 만큼 당연히 그 형태는 기능에 지배된다. 그러나 기능을 충족시키는 형태는 오직 하나뿐일 수는 없다. 아마도 거기에는 몇 가지 종류들이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여러 조건에 맞는 형태를 작가의 사상이나, 의지나, 눈과 손으로 발견하는 일이 바로 의장의 기초이다. 인간의 신체·기관 모두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알고, 그에 적합한 형태를 창조할 필요가 있다. 공예품은 모두 인간의 동작과의 관계에서 그 형태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기능적 조건 위에서는 추상예술이다. 쓰기 쉬운 형태는 동시에 아름다운 형태가 아니면 안 된다. 그리하여 그것이 참으로 기능적이기 위하여 기계적 기능처럼 심미적 기능도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 이것은 곧 의장이 채워주는 것이다.


【공예의 분류】

 옛날에는 공예의 영역이 매우 넓었지만 오늘날엔 상당히 좁아졌다. 그렇다고 해도 그 범위는 넓으며, 그 속에는 여러 종류의 것이 포함되어 있다. 아주 실용적인 기구의 종류에서, 감상하기 위한 고급 공예품에 이르는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제작기술면에서 보아도 완전히 손에 의한 가공도 있는가 하면, 매우 기계화한 기술도 있다. 공예의 분류는 여러 각도에서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분류방법에는 용도나 의장에 의한 것과, 재료나 기술에 의한 것이 있다. 용도 또는 의장에 의한 분류를 입체적인 것에서 평면적인 것으로 배열해서 간단하게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기계―가구―기구―장신구―의복―도서―직물―포장―광고·포스터. 또 공예가 인간의 생활환경을 마련하고, 그것에 형태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분류도 가능하다. 미용―장신구―기구―가구―실내장식―건축장식―가로장식(街路裝飾).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분류는 재료와 기술에 의한 것이다. 이것도 역시 입체적인 것에서 평면적인 것으로 배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유리―도자기―보석―금속공예―목공예―칠공예―조(엮음)―염직(染織)― 인쇄―제지(製紙)―사진. 이것들 외에도 현대과학의 산물로 새로운 인공재료나 합성수지 등 다양한 재료와 기술들이 등장하였다. 같은 재료라고 해도 그것을 가공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가공방법이 달라지면 만들어진 작품도 달라지므로 수없이 분류해야 한다.


【한국의 공예】

 한국은 고대부터 우수한 공예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삼국시대의 금속공예나 석공예 등과 통일신라시대의 많은 공예품 등은 한국인들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고려 때의 청자의 아름다움은 청자의 본고장인 중국인들까지도 놀라게 하였고 나전칠기의 걸작품들이 현재까지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을 정도이다.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백자 등의 아름다움은 많은 외국인들이 소장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목공예품이 가지는 한국 고유의 멋도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에 족하였다. 이렇게 한국의 옛 공예품이 새롭게 평가되고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재생하는 운동이 60년대부터 일어났다. 신라의 토기·금속공예· 석공예, 고려의 청자·나전칠기, 조선의 분청사기·백자·목공예·화각장·탈·금속공예 등을 인간문화재들이 재현하여 전승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계문명이 가져온 대량생산·획일성· 합리성, 단조롭고 싸늘한 것에 대한 반발과, 생활의 미와 전통적인 조형양식에 대하여 눈을 뜬 결과이다. 70년대에 들어와서 급속히 발전한 현대공업의 물결은 자연히 공업디자인과 모던 크래프트의 탄생을 가져왔다. 또 각 대학에 응용미술과나 공예과 등에서,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이 많은 점도 한국 공예의 미래를 밝게 한다.

 

구로구 미술교육기관 윤아뜨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