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시대(Greece)
건축이나 조각의 초기 양식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등 오리엔트 미술의 영향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형식을 배운 데 지나지 않고, 그 세부적 표현에는 그리스의 독자적 양식과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이를테면 이집트에서의 그리스 조형(造形)은 그들 종교관과 같이 전통과 형식 속에 정지해 있는 데 비해, 그리스에서는 종교가 현세적(現世的)이어서 그 조형은 사실적이며 동적(動的)이다. 그래서 그 미술은 정체되는 일이 없이 항상 종전의 형식을 깨뜨리고 발전시켜, 그들의 이상미(理想美)를 형성해나갔다. 그리스 미술의 특질은 다른 어떤 민족에게서도 볼 수 없던 인간을 중심으로 한 합리성의 추구였다. 인간만이 자연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고 있던 그리스인은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 완전한 이상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그것은 조화·통일·균정(均整)에 의한 이상미의 탐구인 것이다. 그리스 미술이 이전의 크레타· 미케네 미술을 그 바탕에서 계승했으면서도, 그것들과는 다르게 발전한 원인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건축】 그리스 건축의 예술적 달성은 대리석으로 만든 신전·극장·스토아(stoa), 그리고 다른 공공건물이나 기념비적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으뜸 가는 현존 건축양식은 서양건축의 기본적 양식으로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그리스의 신전은 최초에는 목재, 다음에는 석회석과 같은 무른 석재들로 지어졌으나, 마지막에는 대리석으로 바뀌었다. 그리스 신전은 신의 주거(住居)이며, 신상을 모시는 건물로서, 그 안에 모여 제례의식(祭禮儀式)을 행하는 장소는 아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적 건물이 내부 공간에 중점을 두는 것과는 달리, 외형적 모습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했다. 수평의 보[樑]와 수직의 기둥에 의한 단순하고 명석한 신전은 각 부분이 유기적 통일을 유지하고 아름다운 비례를 가지고 있어서 일종의 조소적(彫塑的) 성격을 보이고 있다. 신전의 원형(原形)은 미케네의 단순한 메갈론(megalon) 형식에서 발전한 것으로, 그 평면은 전실(前室)·주실(主室)·보고(寶庫)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간단한 구조는 인 안티스형(型)이라고 하며, 델포이의 성지(聖地)에 세워진 아테네인(人)의 보고, 시프노스인(人)의 보고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전면 또는 앞뒤에 열주를 가지는 형식을 프로스틸로스(prostylos), 신전 둘레에 1줄의 기둥을 둘러 세운 형식을 페리프테로스(peripteros), 2줄의 열주(列柱)를 세운 것을 디프테로스(dipteros)라고 한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은 페리프테로스, 디듀마의 아폴론신전이나 아테네의 올림피에이온은 디프테로스 형식의 대표적 신전이다. 그리스의 신전형식은 그 기둥의 양식(樣式)의 차이로 도리스식(Doric 式), 이오니아식(Ionic 式), 코린트식(Corinthian 式)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서 도리스식이 비교적 일찍이 도리스인(人)이 살고 있던 그리스 본토와 남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① 도리스식: 도리스식 오더라고도 한다. 이오니아 건축과 코린트 건축을 합친 세 건축양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주로 도리스(도리아)인이 살던 펠로폰네소스반도에서 시작되어 본토 각지 및 이탈리아 남부, 시켈리아(시칠리아)에 전파하였다. 건축상의 특징은 기둥이 굵고 주초(柱礎)가 없으며 주두(柱頭)는 얕은 사발 모양을 한 주관(柱冠:echinus)과 네모진 모양의 판관(板冠:abacus)으로 되어 있다. 기둥의 높이는 대략 직경의 4.5∼6배, 주신(柱身)에는 세로로 16∼20개의 도랑[圓溝]이 새겨져 있고, 윗부분은 차차 가늘어지면서 엔타시스(entasis)라는 불룩한 부분이 있다. 또한 주신 위의 장식대(裝飾帶:frieze)에는 주로 부조로 된 메토프와 세줄 홈 무늬의 트리글리포스가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그 간소하고 힘찬 취향은 우아한 이오니아 양식에 비해 그리스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도리스 양식의 가장 오래된 유구(遺構)는 올림피아의 헤라신전(BC 7세기 중엽)이며, 이 밖에 코린트의 아폴론신전(BC 5세기 초엽),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BC 5세기 중엽) 등이 있다. ② 이오니아식:이오니아인들이 살고 있던 소아시아 서해안에서 생긴 양식으로, 형식은 도리스식과 거의 비슷하다. 도리스식이 묵직하고 장중하며 단정한 데 비해, 이오니아식은 기둥이 높고 가늘며, 세부에 걸쳐 조각 장식이 많이 있어서 경쾌하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 예로부터 대체로 도리스식은 남성에, 이오니아식은 여성에 비유되었다. 기둥과 기단 사이에는 아름다운 주초(柱礎)가 끼워져 있고, 2개의 소용돌이 무늬를 연결한 특유한 기둥머리[柱頭]를 가지고 있다. 기둥 위 제일 아래의 하대(下帶)는 수평으로 삼분(三分)되어 있고, 중간대(frieze)는 트리글리프와 메토프 대신에 두루마리 그림 모양의 연속 부조(浮彫)가 새겨져 있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신전은 이 시기의 대표적 이오니아식 작품이었다. 아테네의 에렉테이온, 니케 아프테로스신전은 그 좋은 예이다. 델포이의 시프노스인의 보고는 인 안티스형의 이오니아식 소신전으로, 원주(圓柱) 대신에 여인상(女人像)이 사용되었다. 현재 정면만 원형으로 복원되어 델포이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③ 코린트식:BC 4세기에 들어서서 비로소 나타난 건축미술의 새로운 기법이다. 기둥머리[柱頭]는 원뿔형을 가운데서 잘라 뒤집어놓은 모양이며, 그 표면에 아칸서스의 잎과 덩굴이 얽힌 모양을 조각했다. 그 이외의 부분의 구성은 이오니아식과 거의 같으며, 비교적 자유로운 변화가 보인다. 전체로서는 이오니아식에 비해 한층 더 우아하고 화려한 것이 그 특징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가까이에 있는 올림피에이온은 가장 현저한 코린트식 신전으로, 전면 8주(柱), 측면 20주의 이중주주식(二重周柱式)이며, 약 17 m 높이의 열주가 l04개나 늘어선 최대의 신전이다. 아테네의 리시크라테스의 합창대 우승기념비도 순수한 이 양식의 유일한 작품으로서, 사각형의 높은 대좌(臺座) 위의 코린트식 기둥 사이에 원당(圓堂:torus)을 두고, 원뿔형 지붕의 정점에는 상품인 삼각배(三脚杯)를 장식한 소박하나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러한 호사스러운 신전 건축과는 반대로 아르카이크 시대에서 고전시대 전기(前期)에 걸쳐, 본토에서 우세했던 도리스식은 점차 그 모습이 사라져갔다. 신전에는 이런 직사각형의 모양 이외에 원당도 건축되었다. 헬레니즘 후기에는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을 배합한 혼합식도 생겼다. 그리스의 극장은 오르케스트라·테아트론·스케네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오르케스트라는 중앙이 원형 평면으로 된 무대이며, 테아트론은 관람석으로서 반원형인 언덕 사면에 있는 동심원(同心圓)의 돌계단에 마련되었고, 스케네는 테아트론 맞은편에 있는 준비실이나 분장실이며 그 뒤에 열주랑(列柱廊)이 부설되어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남동쪽의 벼랑 밑에 펼쳐진 디오니소스극장은 현재 남아 있는 최고(最古)의 것으로, 관람객 수용 인원은 1만 4000명에 이른다. 에피다우로스의 극장은 가장 완전한 모습을 오늘날까지 보여준다. 스타디움은 긴 U자형 평면을 둘러싼 3방향에 관람석을 계단식으로 마련한 경기장(競技場)이다. 그 중 올림피아의 스타디움은 유명하지만 관람석이 흙으로 된 사면(斜面)뿐이며, 돌로 만든 관람석은 없었다. 아테네의 스타디움은 1896년에 재건되어, BC 4세기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전한다. 신전이나 극장 외에는 시(市)의 중심부인 공공광장(公共廣場)에 시민회장(市民會場)인 브레우테리온이나, 그 집행 기관의 건물인 프리타네이온, 시민의 휴식처인 동시에 물건을 사는 점포인 스토아 등의 공공건물이 죽 늘어서 있었다.
【회화】 그리스 시대의 회화(繪畵)는 오늘날 거의 없어져 버렸다. 그 때문에 고대의 문헌·도화(陶畵)와 아울러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로마 시대의 현존하는 벽화를 통하여서만 상상할 수밖에 없다. 문헌에 의하면 화가로서 최초로 알려진 거장(巨匠)은 타소스의 폴리그노토스이다. 그는 BC 470년경부터 아테네에 와서 활약하면서 훌륭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기품이 있고 정확하며 사실적인 묘사는 당시의 조각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BC 5세기 후반에는 아가타르코스가 나와서 비극(悲劇)의 무대 배경을 그렸고, 같은 시대에 아테네 출신의 아폴로도로스는 음영(陰影)에 의한 정밀한 묘사로 유명하여 당시에는 스키아그라포스(음영화가)라고 불렀다. 그 뒤로 제욱시스나 파라시오스 등이 활약하여 철저한 사실(寫實)을 추구했다. 제욱시스가 파라시오스와의 작품 경쟁 때에 그가 그린 포도를 새가 날아와서 쪼았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BC 4세기에는 시크온의 에우폰포스,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에서 회화의 이론적 기초를 부여한 팜필로스, 엔코스틱(encaustic:蠟畵)의 기법(技法)으로 명성을 얻은 파우시아스, 그 밖에도 니코마코스와 플록세노스 등이 활약하여, 원근법(遠近法)이나 명암화법(明暗畵法)에 의한 회화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고 전해진다. 폼페이 출토의 유명한 모자이크화인 《이소스의 전투》는 플록세노스의 명작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의 전투》를 모작(模作)한 것이라고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화가였던 아펠레스는 고전시대 후기의 그리스 최대의 화가로 전해진다. 헬레니즘 시대의 회화는 건축이나 조각과 같이 극히 다양화하여 장식적·동적(動的)· 관능적이 되었다. 그 주제(主題)도 신화(神話)와 역사 이외에 정물화(靜物畵)나 풍속화가 나타났다. 색채는 더한층 화려해지고, 투시원근법(透視遠近法)이 거의 달성되었다. 폼페이나 헤르쿨라네움의 벽화는 이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공예】 그리스의 공예를 대표하는 것은 도기(陶器)이다. 최초의 도기는 BC 10세기경의 초기 기하학양식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기하학양식의 전형(典型)은 아테네의 디필론 묘지에서 출토된 BC 8세기경의 한 무리의 거대한 항아리이다. 뒤이어 BC 8세기부터 BC 6세기 초에 걸쳐 그리스 각지에 동방(東方)의 유익수(有翼獸)나 물새, 동물이나 인물을 실루엣으로 그린 여러 형태의 다채로운 항아리가 나타났는데, 동방양식에서 코린트 양식의 항아리이다. BC 6세기에 아테네에 흑회식(黑繪式) 도기가 생겨 도기는 현저히 발달하였다. 이것은 적갈색 바탕흙[胎土] 위에 검은색으로 실루엣 화상을 그리는 기법이다. 그 가장 뛰어난 예는 화공인 클리티오스와 도공(陶工) 에르고티모스의 작품인 크라텔 《프랑수아의 항아리》이다. 그 뒤 BC 5세기 말에 홍회식(紅繪式) 도기가 나타났다. 이것은 그림의 부분은 적갈색 바탕흙을 그대로 남기고, 나머지 배경을 흑색으로 칠하는 기법이다. 이 무렵에 백색의 레큐토스도 나타나 이후 그리스의 도예는 형태와 도화(陶畵) 양면에서 최고의 발전을 이루었다. 또 우미한 색채의 부인상(婦人像)으로 알려진 타나그라 인형은 BC 4세기에서 BC 3세기에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금속공예의 재료로는 황금·은·브론즈 등이 쓰였다. 그 가운데서도 청브론즈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여 무기·마구(馬具)·용기·가구·거울 등 다방면에 사용되고, 기법도 타출(打出)·주형(鑄型)·선각(線刻)·상감(象嵌) 등 다양하였다. 올림피아 출토의 《황금의 팔[腕]》, 브론즈의 《그리폰의 두부(頭部)》, 프랑스 비크스 출토의 커다란 안포라, 아프로디테와 빵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선각한 경개(鏡蓋), 그 밖의 귀금속에 의한 장신구 등 어느 것이나 각각 그 시대의 그리스 공예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는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미술이론 Open강좌 > 미술용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대미술_近代美術 (0) | 2012.07.19 |
---|---|
극사실주의_極寫實主義 : Hyperrealism / Superrealism (0) | 2012.07.19 |
그리스미술 (0) | 2012.07.19 |
그로테스크_Grotesque (0) | 2012.07.19 |
그라운드_Ground (0) | 2012.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