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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론 Open강좌/미술용어

불탑(佛塔:Stupa)

by 태풍되고픈천둥 2012. 9. 25.

 

불탑(佛塔:Stupa)

 

 

 

 탑파(塔婆)·솔도파(率堵婆)라고도 한다. 솔도파는 산스크리트인 ‘stupa’를 한자로 음역(音譯)한 말이며, 탑파는 팔리어(語) ‘thupa’를 한자로 음역한 것으로 모두 ‘방분(方墳)’ ‘고현처(高顯處)’로 의역된다. 그러나 스투파의 원래의 뜻은 ‘신골(身骨)을 담고 토석(土石)을 쌓아올린, 불신골(佛身骨:眞身舍利)을 봉안하는 묘(墓)’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탑파란 당초에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로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인도 남단의 스리랑카 같은 나라에서 탑을 다가바 또는 다고바라 부르고 있는 것은 다투가르바, 곧 ‘사리봉안의 장소’라는 말을 약(略)하여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탑을 ‘파고다’라고 일컬으며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도 역시 파고다라고 부르는데, 원래 이 말은 미얀어인 바야와 스리랑카어인 다고바의 혼합어(混合語)이며, 영어에서의 tope라는 말도 thupa에 어원(語源)을 둔 것이다. 흔히 세간에서는 뾰죽한 고층건물을 탑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타워 같은 것이며 스투파는 아니다. 탑파는 BC 5세기 초에 불교의 교주인 석가가 입적하자 그를 모시기 위한 분묘(墳墓)로 축조되었으며, 따라서 그 형식이 후세에까지 불탑으로서의 기준을 이루어 내려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즉 석가모니가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밑에서 입멸(入滅)하자 그의 제자들은 유해를 다비(茶毘:火葬)하였다. 그러자 인도의 여덟 나라는 그의 사리(舍利)를 차지하기 위하여 무력에 호소할 태세까지 보였는데, 이때 도로나(徒盧那)의 의견을 따라 불타의 사리를 똑같이 여덟 나라에 나누어 주어 각기 탑을 세우니 이를 분사리(分舍利) 또는 사리팔분(舍利八分)이라고 한다.  사리신앙은 이때부터 비롯되었으며, 따라서 역시 이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석가가 입멸한 지 100년이 지나 인도제국을 건설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阿育王]은 불사리를 안치한 8탑을 발굴하여 불사리를 다시 8만 4000으로 나누어 전국에 널리 사리탑을 세웠다고 한다. 물론 8만 4000이라는 숫자는 정확하지 않다 하더라도 신심(信心)깊은 아소카왕이 넓은 지역에 일시에 많은 탑을 건립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고, 결과적으로 불교전파에 큰 역할을 하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중국의 불전(佛典)과 인도의 학자들 사이에는 약간의 의견차이가 있다. 인도 학자들은 사리팔분도 8탑이 아니고 나가족[蛇族]의 반대로 7기(基)의 근본탑(根本塔)에서만 발굴하였다 하며, 아소카왕의 8만 4000탑도 ‘탑(stupa)’이라 하지 않고 ‘비하라(Vihara)’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비하라는 일반적으로 승원(僧院) 또는 불전(佛殿, 精舍)이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8만 4000의 비하라는 일종의 건축으로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사당(祠堂)이든 스투파이든 어느 것이나 불사리를 봉안한 것이면 일괄하여 부른 것이라고 하겠다.  오늘날 스리랑카의 캔디사원에는 석가의 치아라고 하는 것을 봉안하고 있고, 인도의 탁실라 다르마라지카 대탑 근처의 건물터에는 작은 스투파를 모시는 사당이 있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지하에 큰 돌을 놓고 그 돌 밑에 돌항아리 모양의 사리용기(舍利容器)를 봉안하였으며, 그 안에 은항아리와 은엽(銀葉)이 있었는데 은항아리 속에서 사리가 발견되어 지하의 사리도 대부분의 다른 스투파에서의 사리 봉안방법과 다를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불사리(佛舍利)는 사당이나 수미단(須彌壇) 위에 봉안하는 방법과 지하에 봉안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사리를 탑에만 장치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석가의 입멸 후 신자들은 그를 숭배한 나머지 그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탑 속에 안치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예배공양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교가 널리 퍼지고 탑파가 더욱 많이 세워짐에 따라 극히 한정된 불타의 진신사리로는 그 많은 신자들의 요구에 응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석가의 머리카락[佛髮], 불타의 손톱[佛爪], 석가의 이[佛齒] 등을 봉안 예배하거나 석가의 옷[衣鉢]이나 좌구(座具) 등의 유물로써 석가를 상징하는 본존(本尊)으로 공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세에는 이것마저도 그 진위(眞僞)를 가려낼 수 없게 되자, 절대로 변함이 없는 석가의 유적지인 탄생지·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성도지(成道地)· 열반지(涅槃地) 등 4대 성지(聖地)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그곳에 탑파를 건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영장(靈場)·고적(古蹟)을 표시하는 기념탑적인 것을 지제(支提:Caitya)라고 하여 불사리를 봉안하는 탑과 구별하게 되었다. 어떤 경전에는 “사리가 있는 것을 탑파라 하고 사리가 없는 것을 지제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후세에 이르러 사리가 있고 없음을 외관상으로 구별하기란 사실상 매우 곤란한 문제이며, 따라서 이러한 정의는 하나의 해석에 불과할 뿐, 오늘날의 불교국에서는 탑과 지제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도에서 비롯된 불탑은 반구형(半球形)을 이루어 마치 분묘와 같은 외관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한국 경주의 왕릉을 연상하면 좋을 것이다. 인도의 탑은 그 발생의 연유와 봉안된 내용에 따라서 원분형(圓墳型)을 이루고 있었는데, 점차 시대가 지남에 따라 그 밑에 높은 기단이 만들어져서 탑신을 받들도록 되었으며, 탑 위의 상륜(相輪)도 그 수효가 늘어나는 한편, 이들을 보호하고 장엄하게 하기 위한 돌난간이 만들어지고 그곳에 우아한 조각이 새겨졌다. 오늘날 인도 초기의 조각이 주로 기원전의 바르후트탑이나 산치탑의 돌난간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불상 출현 이전에는 오직 탑만이 건립되었고, 그곳에만 장엄함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한국의 불탑】 한국의 불교는 중국을 거쳐서 4세기 후반에 수용되었고 불탑의 건립 또한 인도에서 직접 전해진 것이 아니라 중국을 거쳐 그 기술을 습득하였다. 한국에서 사찰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건립되었던 불탑은 그 초기에는 모두 목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구려의 평양 청암리사지 목탑지(淸岩里寺址木塔址), 백제의 부여 군수리사지 목탑지(軍守里寺址木塔址), 신라의 경주 황룡사 9층목탑지(皇龍寺九層木塔址) 등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목탑과 나란히 일찍이 삼국 말기부터 석탑이 건립되었다. 이것은 국내 도처에서 생산되는 화강석을 재료로 삼아 만들어진 것으로 600년경에 백제에서 비롯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자취로서는 전북 익산군 미륵사지(彌勒寺址)의 다층석탑과 부여의 5층석탑의 2기(二基)를 들 수 있다. 오늘날에 전래하는 이들 백제석탑은 모두 한국석탑의 조형(祖型)으로서, 그에 앞서서 유행하였던 목탑을 본받아 건립되었다. 그러나 신라에서는 석탑 발생의 사정이 이와는 다르다.  신라에서는 일찍이 분황사석탑(芬皇寺石塔)이 건립되었는데, 이것은 안산암(安山岩)을 벽돌처럼 작게 잘라서 쌓았으며 그 양식 또한 중국의 전탑(塼塔)을 모방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백제와 신라는 초기 석탑의 양식을 각기 달리하였다 하더라도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계기로 이들 두 계통의 석탑양식이 하나로 종합되어 신라석탑으로서의 전형양식(典型樣式)을 이루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한국석탑의 전형으로서 이후 고려·조선 시대를 통하여 그 주류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에 있는 불탑들은 그 건조재료에 따라 목조탑파(木造塔婆)·석조탑파(石造塔婆)·전조탑파(塼造塔婆)·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전탑과 모전석탑은 건탑에 앞서 벽돌을 생산하여야 한다는 수공 때문에 전국적으로 크게 유행하지는 못하고 일부 지역에서만 세워졌던 것이다. 목탑은 그 자체가 목재이기 때문에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다 소실되어 실물이 전해지는 것은 없고, 현재는 그 터만이 각처에 남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석질이 좋은 화강암을 다량으로 채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석탑이 크게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 1,000여 기의 불탑 중 그 대부분은 석탑이다. 그러므로 중국을 ‘전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고 한다면, 한국은 ‘석탑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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