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주의(構成主義: Constructivism)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에서 건축, 조각, 회화, 공예의 여러 분야에 걸쳐 일어난 전위적인 추상미술운동. 그 이름이 나타내고 있듯이, 외계의 대상에 대한 재현을 일체 거부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환원된 조형 요소의 조합으로써 작품을 구성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는 , 본질적인 조형 요소를 중요시하여 쓸데없는 장식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즉 그것은 건축에 있어서는 기능주의로, 조각ㆍ회화에 있어서는 기하학적 추상주의로 이어진다. 특히 건축ㆍ조각에 있어서는 금속, 유리, 그밖의 근대 공업이 나은 새로운 소재를 구사하여, 참신한 공간 표현을 하였다. 특히 이 운동은 조형 활동에 의한 사회 건설의 참여를 주장하며, 정치성과도 적극적인 결합을 보인다. 자기표출(自己表出)로서의 예술이기보다, 공간구성 또는 환경형성을 지향했다. 필연적으로 기능성이 중시되고, 기계주의적 내지는 역학적(力學的)인 표현이 강조되었다. 재래의 회화나 조각의 개념을 풀어 헤치고, 새로운 공업시대에 적응하는 조형의 방법을 찾으려는 자세가 뚜렷했다. 구성주의는 개성보다는 법칙성을 우위에 둔 라리오노프의 레요니슴(Rayonism:光線主義)선언(1912)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리오노프는 대각선이 교차되는 것뿐인 작품을 발표하고 이 주의를 표명하였다. 그의 주변에는 K.S.말레비치, 타틀린, 시인인 V.V.마야코프스키가 있어서, 신시대의 예술창조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 레요니슴에 이어 큐비즘을 급속히 밀고 나가던 말레비치는 1913년 흰 바탕에 검은 원·정사각형·+자형만 그린 작품을 발표하고, 거의 그 진로를 결정하였다. 마야코프스키의 협력을 얻어, 말레비치는 1915년에 절대주의 또는 예술지상주의라고 할 쉬프레마티슴(suprematisme)을 표명하였는데, 이것이 그 후의 구성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이 무렵에 타틀린은 피카소의 영향을 받아 나무나 금속 등을 사용해서, 비재현적인 릴리프를 시도하고 있었다. 이런 풍토 속에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으로부터 A.페브스너·가보·리시츠키·칸딘스키 등이 귀국하고, 또한 A.M.롯첸코도 가담하여, 러시아 혁명이란 사회의 변혁기와 호응하면서 구성주의 운동이 결속된다. 1918년에는 칸딘스키의 구상으로 모스크바에 고등기예공방(高等技藝工房)이 설립되어 구성주의의 하나의 거점이 되었다. 1919년에 타틀린이 설계한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 은 나선형의 ‘구성’의 전형이 되었다. 1920년에 페브스너와 가보는 ‘리얼리즘선언’을 발표하고 “생명의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공간과 시간의 두 가지 기본적 요소에 입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양괴(量塊)는 유일한 공간적 요소는 아니다. 시간의 진정한 성질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역학적인 다이내믹한 요소가 쓰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주장하였다. 그 해에 구성주의 대전람회가 조직 되었다.이렇게 페브스너와 가보는 구성주의를 기반으로 신시대의 창조를 선언하지만, 순수조형을 지향하는 이들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타틀린이나 롯첸코는 예술의 유용성을 강조해서 구성주의 내 부에 대립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22년 알렉세이 간이 구성주의를 선언하고 예술의 완전 폐기 를 주창할 무렵, 페브스너·가보·리시츠키·칸딘스키 등이 잇달아 유럽으로 망명해서 구성주의 이념을 유럽과 미국 등지에 퍼뜨렸다. 페브스너 형제는 독일에서 ‘바우하우스’에 협력하여 이 운동은 유럽에 급속히 퍼졌다. 페브스너는 뒤에 파리에 머물며 ‘추상·창조’ 그룹의 창립에 참가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인 46년에 추상예술의 종합단체 ‘살롱 데 레일리테 누벨’을 창립하였다. 가보는 파리,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제작을 계속하였다. 페브스너는 주로 금속으로, 동생 가보는 유리나 플라스틱 등의 투명물질로 각각 다이내믹한 작품을 발표해서, 오늘의 구성주의를 대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데 스틸(De Stijl)’이나 ‘바우하우 스’에 끼친 영향도 컸고, 파리에서 설립된 ‘추상·창조’의 그룹도 구성주의의 계보에 속한다. 구성주의의 핵심은 예술가가 기계적 생산과 건축 공학 및 그래픽과 사진을 통한 의사전달에 직접적인 관련을 맺음으로써 사회 전체의 물리적, 지적 요구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 할 수 있다는, 깊은 확신의 표현이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그들의 열망을 표현하며 그들의 감정을 조직하고 체계화시키는 것이 목표였으며, 예술의 사회화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단순한 기하학적 헝태들을 실재 대상을 재현, 암시하게끔 보이는 문학적 문맥속에 배치하고 또 포스터 디자인이나 몽타주 사진 또는 책과 잡지의 삽화에서처럼 사진 영상들의 단편들이 현실을 환기시키는데 필요한 참고자료가 되는 등의 선전적인 경향을 띄었다. 이러한 생각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루이스 설리반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헨리 반 데 벨데와 미래파의 안토니오 산텔리아와 같은 사람들이 먼저 생각하고 있었던 예술가, 창조적 디자이너는 과학자와 공학기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생각과 일치한다. 즉, 장식을 벗어버린 건물과 단순한 기본 형태에 내재한 순수성을 옹호하며, 새로운 공업재료와 기계가 그 자체속에 특유한 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건축학적 원초주의 : 알렉산더 로드첸코 자와 컴퍼스만으로 작업) 구성주의적 사실주의의 전형은 근본적으로, 평면과 다소 환각적인 표현방식에서 출발하여 3차원적인 모형을 만들고 그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실용적인 물건을 실제 구축해 냄으로써 그 완전한 실현을 보게 되는 일련의 창작과정의 이념을 전달하며 그 본래의 의미에 있어서 직관, 영감, 자기 표현등 천재의 개념을 배격하고 가르치려는 성격이 강하며 그것은 심리적이기보단 생리적인 방향으로 이끌며 과학 및 공학기술과 밀접하다. 즉 사회적 편의와 공리적 의의, 그리고 과학과 기술에 바탕을 둔 생산, 이런것들이 구성주의의 가장 큰 원칙인 것이다. 결국, 공간구성·환경형성이라고 하는 구성주의 정신은 근대 건축이나 근대 디자인의 성립에 커 다란 시사를 부여한 외에도 다극화(多極化)하였고 오늘날의 순수 형태 추구의 모든 장면 에서, 방법이나 이념을 계속 제시해 와서, 러시아 구성주의라고 하는 당초의 운동을 초월한 보다 넓은 의미의 구성주의로 그 뜻이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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